[데스크칼럼]민태성 국제경제부장 "쫓겨난 판디트…정신 못차린 월가"

입력 2012-10-26 11:34 수정 2012-10-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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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월가가 충격에 빠졌다.

오전 8시9분 씨티그룹이 긴급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비크람 판디트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이었다.

주요 외신은 이를 일제히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월가가 ‘쇼크(shock)’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바로 전일 씨티그룹은 예상을 상회하는 실적을 발표했다. 누구도 판디트의 사임을 내다보지 못했다.

씨티그룹 내부에서도 판디트의 사임 소식은 대단한 파장을 불러왔다.

20여시간 전 실적 관련 콘퍼런스콜에서도 씨티그룹 측은 “우리의 CEO 비크람 판디트를 소개합니다”라며 행사를 진행했다.

당연히 왜 그가 사임을 결정했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씨티그룹은 아직까지도 판디트의 사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판디트 본인이 결정했다는 것이 씨티그룹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판디트 역시 해고가 아니라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5년 동안의 임기 중에 별다른 비난을 받지 않을 정도로 원만한 경영을 펼쳤다.

판디트는 온화한 성격으로 주변에 특별한 정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말처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회사를 재건했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했으며 자본도 늘려놨다.

일각에서는 판디트가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사실상 쫓겨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판디트가 지난 3월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약속했지만 금융당국의 압력으로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데다 주총에서 임원보수 인상안에 대해 주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면서 궁지에 몰렸다는 것이다.

금융업종의 주가가 죽을 쑤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취임 이후 씨티그룹의 주가가 90% 가까이 급락한 것도 사임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판디트의 사임으로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대표 금융기관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 9명 중 7명이 현직을 떠났다.

당시 메릴린치 웰스파고 모건스탠리 뱅크오브뉴욕멜론 등의 수장들은 이미 월가에서 잊혀진 인물이 됐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금융 패러다임을 붕괴시킨 주범이 대부분 모습을 감춘 셈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와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 정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들 역시 금융위기와 관련된 청문회에 끌려다니며 변명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이는 등 위신이 말이 아니다.

금융산업에 대한 불신에 가득한 시민들은 대부분 월가 CEO들의 사임을 반겼다.

그러나 판디트의 경우는 다르다.

판디트의 사임 소식을 들은 워싱턴의 한 정치인은 씨티그룹의 결정을 ‘서투른 짓’이라고 폄하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이후 망해가는 회사를 살려놨더니 씨티그룹이 판디트를 버렸다고 했다.

결국 판디트의 사임 사태는 기업의 명운보다는 당장 눈 앞의 돈 몇 푼에 몸 달은 이사회의 작태였던 것이다.

금융위기 여파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월가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월가의 2011년 연봉은 평균 36만 달러를 넘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올해 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부 금융맨들은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에서만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수천만 명이 집을 잃었고 이들 중 상당 수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 역시 미국발 금융위기가 사태를 악화시킨 뇌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분위기를 쇄신하고 올바른 비전을 제시할 인물을 영입해도 모자른 상황에, 씨티그룹은 그나마 제대로 된 경영을 펼치고 있는 리더를 내쳤다.

제2의 금융위기를 피하게 해달라고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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