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가장 길게 보존되어 있다는 이스트사이드갤러리 중간쯤에 뻘쭘한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다. 주인공은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엔리히 호네커(오른쪽)와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왼쪽)이다. 민주화 세력이 봉기를 하면 소련군을 투입해서라도 강력 진압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브레즈네프와 가장 모범적인 사회주의 모델로 그에게 보답한 호네커간의 이날 키스는 일명 Fraternal kiss, 즉 형제간의 키스로 불리며 서방 언론에 조롱당했다. 그리고 독일 통일 이후 The Kiss of Death, 즉 죽음의 키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탄압받던 사람들 관점에선 두 꼴통간의 연대가 썩 반길 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1945년 8월15일 광복과 함께 38선을 경계로 우리나라는 분단됐고, 독일 또한 그쯤 2차 세계대전으로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됐다. 하지만 독일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룬 반면, 우리의 남북통일은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천안함 사건, 연평해전, 핵문제 등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녹록지 않다. 우리는 정말 통일을 할 수 있을까?
필자가 베를린 장벽이 가장 길게 보존돼 있다는 이스트사이드갤러리를 찾은 11월9일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역사적인 날이었다.
▲베를린 장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아트를 한 관광객이 지켜보고 있다.
동독의 신임 중앙위원회 정보 담당 서기인 샤보프스키는 동독민들의 해외 이탈을 더이상 방관할 수 없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외여행 자유화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언제부터냐고 묻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는 '즉시 지체없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내뱉었다. 이 한 마디로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장벽은 무너졌고, 독일은 통일을 이루게 된다.
▲포츠다머플라츠 거리에 전시된 장벽 사이로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통독 후 'No man's land' 였던 곳은 포츠다머플라츠로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하여 세계 유수 건축가들의 건축물이 들어찼으며, 동역(ostban hof)쪽 장벽은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이 그려놓은 벽화로 노상 갤러리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베를린에서 분단의 흔적을 찾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그 분단의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리기보다는 흔적으로 남겨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듯했다.
▲채크 포인트 찰리에서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2유로에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막상 가서 본 베를린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무척 답답했다. 그러나 그들의 장벽은 우리의 비무장지대보다 훨씬 가깝고 친근해 보인다. 솔직히 평소 생활하면서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분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고, 우리의 아이들은 더할지도 모른다. 베를린 장벽이 어느 순간 예고없이 무너진 것처럼, 우리의 장벽도 언젠가는 허물어 질 것이다. 그 전에 우리의 마음의 장벽부터 걷어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가 옛 서독에서 동독으로 국경선을 넘어가고 있다.
▲옛 동서독의 유일한 이동 통로 채크 포인트 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