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카라, 소년시대, 배용준, 장근석에 열광하는 일본인들, 장동건과 동방신기 이영애에 환호하는 중국인들, 비스트나 소녀시대 춤을 따라하는 유럽과 남미인들, 한혜진과 송일국을 남녀 이상형으로 꼽는 중동인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풍경의 시원(始原)은 1990년대 중후반 중국 등에서 일기 시작한 한류다.“5000여년의 한국역사에서 ‘한류’만큼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은 없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말은 결코 과장이나 허언(虛言)이 아니다.
한류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도 우리 스스로가 믿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해외에 수출하고 전파한 사실은 역사 속 한 자락에 자리한 사료(史料)로 치부될 뿐이었다. 대신 우리의 대중문화는 미국의, 일본의 그리고 유럽의 것을 받아들이거나 모방, 더 나아가 표절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는 아류 인식이 엄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언론들이 한국 대중문화의 열기를 지칭하는 용어‘한류(韓流․ㆍKorean Wave)’를 만들어내고 한류가 중국을 넘어 대만 베트남 태국 등으로 거침없이 확산되면서 그 실체를 믿게 됐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가을동화’‘의가형제’등 일부 드라마와 HOT, NRG, 베이비복스, 클론 등 한국 댄스그룹이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시에 중화권과 동남아에서 차인표 장동건 전지현 김희선 등 한류스타 팬덤이 강력하게 구축되기 시작했다.
거세게 상승하던 한류가 주춤하던 2000년대 초반 한류가 이내 끝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지배했다. 하지만 이때 한류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바로 2003년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방송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한류가 대중문화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화권에서의 한류와 차원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서의 한류는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겨울연가’는 2004년 일본 히트상품 2위에 기록되고 ‘겨울연가’ DVD, 소설, 비디오 매출액은 90억엔을 비롯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심지어 일본 다이치(第一)생명 경제연구소는 한일 양국에서 배용준과 ‘겨울연가’가 창출한 경제부가가치가 2조3,0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이후 2000년대 초중반‘내이름은 김삼순’‘궁’‘천국의 계단’‘올인’등 드라마와 ‘외출’을 비롯한 영화 등 한류 영상물은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의 문화콘텐츠 시장이라는 일본에서 최고 인기 콘텐츠로 부상했다. 또한 이 시기 보아가 일본에 직접 진출해 오리콘 차트를 석권하고 배용준 최지우 류시원 이병헌 권상우 송승헌 등 한류 스타들의 흥행파워가 일본에서 강력하게 발휘되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 콘텐츠의 대일본 수출액은 2002년 241만 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겨울연가’방송이후인 2004년 3608만달러, 2005년 6637만 달러로 급상승했다.
이 시기에 ‘내사랑 링링’(2002년)‘프렌즈’(2002년) ‘북경 내사랑’(2004년) 등 한중 혹은 한일 합작 드라마가 등장해 외국과의 공동제작을 통한 문화교류의 물꼬가 터졌고 ‘론도’(2006년)의 최지우, ‘띠아오만 공주’(2006년)의 장나라처럼 외국 드라마에 진출하는 스타들도 속속 등장했다.
잠시 주춤하던 중화권의 한류 역시 ‘대장금’이 기폭제가 돼 다시 한번 화려한 도약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인어 아가씨’‘아내의 유혹’등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대장금’은 문화 콘텐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음식을 비롯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2005년 이후 한류는 외연을 확대하며 양적, 질적 진화를 거듭하기 시작했다.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한류에서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콘텐츠는 드라마, K-POP, 영화였지만 2005년 이후부터는 온라인 게임, 만화, 한식, 패션, 한글 등 다양한 한류 콘텐츠들이 외국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또한 초창기 중국 일본 동남아의 중심의 한류는 이제 이란 등 중동과 중앙아시아, 미국, 유럽, 남미에 이르기까지 전지구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란에서 ‘대장금’(2007년 방송)이 86%의 경이적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한류의 확산지역이 얼마나 광범하게 그리고 확고히 자리 잡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교통상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 한류 팬클럽은 일본 중국 미국 유럽 중남미 중동 등 73개국 843개로 회원수만 670만명에 달한다. 이는 한류가 얼마나 세계각국에 확산됐는지의 단적인 증표다.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류스타도 변화를 했다. 배용준 장동건 권상우 류시원 송승헌 이병헌 최지우 김희선 이영애 보아 등에서 인기의 축이 장근석 김현중 소녀시대 비스트 샤이니 등 젊은 스타로 옮겨가고 있다.
한류의 상승에 따라 문화콘텐츠 수출액도 급상승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문화콘텐츠 수출액은 2006년 13억7300만달러, 2009년 26억4000만달러, 2010년 32억달러, 그리고 2011년 43억7200만 달러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보였다. 한류의 경제적 파급효과 역시 2012년 올해 12조원에 달하고 2015년 19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초창기부터 2010년까지 한국 드라마가 선도해온 한류는 2010년대 들어 아이돌 그룹과 걸그룹이 선도하는 K-POP이 한류를 이끄는 것으로 변모했다. 아이돌 그룹과 걸그룹의 음악은 일본을 강타한데 이어 유럽, 남미, 미국 등 지구촌을 강타하며 또 한번 도약을 했다. 일본에선 걸그룹 카라가 지난 한해 벌어들인 수입은 695억원에 달하고 소녀시대 샤이니 등 아이돌 그룹은 유럽과 미국에서 무대공연을 펼쳐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한류는 인터넷과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미디어의 활성화로 인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을 맞았다. 한류는 그동안 K-POP, 드라마, 영화, 한류 스타 등이 해외 직접 수출과 진출을 통해 외국 소비자의 반응을 얻었다면 이제는 간접 진출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전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싸이가 단적인 예이다. 싸이는 지난 7월15일 ‘강남스타일’을 발표하면서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올렸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강남스타일’을 접한 외국 유명 뮤지션과 언론들이 주목하면서 외국인들의 관심이 폭발한 뒤 싸이가 외국에 진출하는 이전과 전혀 다른 한류의 패턴을 선보였다. 이 때문에 싸이를 ‘강제 해외진출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이다. 드라마, 영화, K-POP 그리고 한류스타도 이처럼 인터넷, 유튜브나 SNS를 통해 해외에 먼저 알려지고 다음에 콘텐츠나 스타들이 진출하는 방식이 한류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1997년 김수현 작가의‘사랑이 뭐길래’로 촉발된 한류는 10여년이 지난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지구촌류로 확대됐다는 것이 입증됐다. 물론 한류는 일본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일고 있는 반한류, 그리고 완성도와 다양성, 독창성 저하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외면하는 외국인 증가, 한류스타들의 문제 있는 행태로 인한 반감고조, 정부가 전면에 나서 선도하는 한류에 대한 외국정부와 외국인들의 거부감 증대 등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말이다.
10여년 사이에 전지구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한류에 대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민족주의적 담론, 전통과 한국적인 것을 버리고 터보 자본주의화 과정에 동참한 결과물이라는 시각, 거대문화자본이 기획, 조직한 문화산업버전이라는 입장, 한류는 일종의 미국문화의 변종으로 식민지적 수출산업의 연장선상이라는 의견, 한국대중문화의 약진을 바라보는 소아적 문화우월주의의 행태, 미국이 주도해온 글로벌네트워크에 대한 대항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과 담론이 존재해왔다. 한류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5000여년의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이며 문화적 그리고 산업적 잠재성이 무궁무진한 콘텐츠라는 사실이 지난 15년간의 한류의 역사에서 명백하게 입증됐다. (‘방송작가’11월호에 기고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