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친구를 통하여 마음을 도스르고 겉치레뿐이던 의식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새 친구인 고무장갑을 끼고 나면 더럽다는 고정관념이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복싱 선수가 글러브를 끼고 사각의 링에 선 모습처럼 당당하였고, 세상과 맞설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음식물을 토해 놓은 지저분한 상황에도, 묽은 변이 변기 밖으로 너저분하게 얼룩져 냄새를 풍겨도, 고무장갑만 끼면 만사형통이다. 두려움도, 더러움도 모두가 해결된다. 그럴 때마다, 고무장갑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고 한편으론 미안한 생각에 측은한 마음마저 갖기도 한다. 밀대로 바닥을 닦을 때도 고무장갑을 끼고 나면 자루에 밀착되어 제대로 힘이 들어가고 일에 대한 두려움도 멀리 사라져버린다.
고무장갑은 아내처럼 겸양하다. 온종일 궂은일을 도맡아 해 놓고도 조금도 생색을 내는 법이 없다.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먼지는 물론이고, 케케묵은 찌든 때를 닦아내고도 시침 뚝 따고 시렁에 올라 벌렁 드러누워서 잠든 양 쉬고 있다. 왼쪽 오른쪽 중 어느 한 쪽 장갑만 일을 시켜도 절대 투덜대는 법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오른쪽만 일을 시키다 보면 힘에 겨운지, 상처가 나고 구멍이 뚫려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면서 소리도 없이 소녀처럼 운다. 그럴 때면 옆에 있던 왼쪽 고무장갑이 다가와 홀라당 옷을 까뒤집어 교대해준다.
고무장갑은 스승처럼 의연하다. 하수구가 막혀 음식물 썩는 냄새가 진동하면 ‘뭘 하고 있어! 내 손가락을 막힌 구멍으로 집어넣지 않고,’ 멀뚱히 서 있는 나를 재촉하여 이끌어 간다. 라면찌꺼기, 머리카락, 김치쪼가리가 나오고 때론 동전도 나온다. 맨 나중에 고무장갑은 커다란 칫솔 하나를 끄집어내며 소리친다. “드디어 걸렸다, 대어가 걸렸어.”하며 껄껄 웃어댄다. 웃어대는 품새가 흡사 중학 시절 모 선생님 웃음처럼 호탕하다.
고무장갑은 무언의 실천가다. 동트는 아침이면 제일 먼저 바스락대며 기지개를 켜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핀 뒤, 귀중중한 장소나 물건을 훔치고 걷어낸다. 어쩌다 내가 짜증이라도 낼라치면 ‘참아,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는 거라네!’ 달래고는 한다. 나 하나의 수고가 많은 사람에게 상쾌함을 선사하고 일그러진 일상을 향기롭게 가꾸는 꽃가게 주인처럼 하루의 아침을 상큼 하게 열어젖힌다.
고무장갑은 친구요, 지극한 아내요, 희생을 강요당하던 어머니요, 구원의 길을 걷는 구도자다.
이제야, 아내의 마음을 읽고 어머니의 일생을 본다. 삶이란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고 나니, 먼 산자락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지막한 예배당 종소리에 머리 숙여 묵도를 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밀대를 밀면서 콧노래를 부르면 세상을 닦아내는 나는 어느덧 해탈한 구도자(求道者)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