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심리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작은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불황기에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소비하지 못하는 심리적 공허함을 작지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를 통해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다.
전통적인 자기 위안형 소비재가 커피였다면 최근에는 식료품을 포함한 음식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식자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프리미엄 소금에서부터 식초, 오일, 직접 수확하는 채소까지 작지만 질 좋은 제품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작은 사치’를 누리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최근 백화점 식품관이 프리미엄 식품매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에서 나타난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프리미엄 식재료 전문점 딘앤델루카는 고급 조미료, 소스 등을 판매하고 있다. 야생화 벌꿀부터 태평양 해수로 만든 소금까지 가격은 기성 제품에 비해 비싸지만 반응은 뜨겁다.
신세계가 청담동에서 운영하는 SSG푸드마켓도 유기농, 토종, 신선 이라는 단어를 내건 상품들로 가득차 있다. 매장에는 1인 1팩 판매, 당일 상품 품절이라는 푯말이 매일 붙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조금 비싸지만 자신을 차별화하는 작은 사치 누리는 모습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도 지난 9월 프리미엄 마켓과 레스토랑을 결합시킨 식품관을 선보였다. 수경 재배한 친환경 쌈채류를 뿌리째 진열한 텃밭형 쇼케이스를 보여줘 고객이 즉석에서 뿌리째로 구입하거나 잎사귀만 커팅해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진열용기에는 영양액이 들어 있어 10일 이상 선도 유지하면서 소비자에게 직접 수확할 수 있도록 했다.
‘작은 사치’ 경향은 소비트렌드가 명품의류 등 ‘자기과시형 소비’를 지나 ‘자기 위안형 소비’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산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소비 주체인 ‘나’는 주관적인 만족도가 높은 소비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큰 소비보다는 소소한 만족에 가치를 두는 심리다. 한 소비심리전문가는 “특히 자아가 강한 현대 젊은 여성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갤러리아 식품관은 농산물 전문가가 채소, 과일 등을 직접 선별해주고 다듬어주는 손질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옥수수, 고구마 등은 즉석에서 조리, 판매해 고객의 편의를 넓혔다. 대형마트의 대용량 제품보다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버리는 것이 없이 신선한 제품을 그때 그때 소비하기 원하는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강남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식품관이 개장한 이후 식품관은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자동차나 샤넬백을 사지 못해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그럴듯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식품관이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소비의 중심이 단골고객이라서 식품관의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비심리가 침체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고가 식료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 식품관 매출 성장률이 매우 높다”면서“백화점 식품관이 약속장소로 이용되는 것처럼 랜드마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슈니발렌 과자처럼 입소문도 상당히 빨라 다른 소비로 보이지 않는 파급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