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향한 야권 단일화가 문재인 후보로 최종 결정되며 막을 내렸다. 마치 축구 한일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을 줄 것 같았던 TV토론은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문 후보의 압승(?)이었다는 토론후의 여론들의 평이 있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퇴 기자회견을 연 23일 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접속(access)한곳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였다고 한다. 안 후보의 기자회견 10여 분 뒤인 8시37분쯤 “안 후보님과 안 후보님을 지지하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미안합니다”란 글을 올렸다고 전해지며, 이 트윗은 54초 만에 한 네티즌이 캡처(포착)해 시사 포털사이트로 옮기는 등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고 한다. TV방송 앵커가 “아직 문 후보의 반응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때 네티즌들은 이미 문 후보 트윗을 놓고 “안철수 지지자를 잡으려는 트윗”이라며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대선전의 풍속도가 변하고 있는 것으로 이제 유권자는 대선 후보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듣고 받아들이는 데 머물지 않고, 그 후보의 행보를 직접 찾아서 확인해 보고 논리를 파악해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퍼뜨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11월 시청역 출구 앞에는 어떤 불매운동의 전단이 붙어 있어 시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었는데, 그것은 국내 3대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JYP소속의 ‘짐승돌’이라는 애칭이 붙은 남성 아이돌 그룹 2PM의 앨범 불매운동 전단이었다. 사연은 2PM의 팬들이 멤버중 리더 격인 박재범의 그룹탈퇴에 항의하는 시위성 전단이었다. 얼마 전 케이블 TV로서는 엄청난 시청률을 올린 ‘응답하라, 1997’로 다시 점화된 소위 빠순이로 불리던 팬클럽이 이제는 팬덤이라는 이름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동경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소속사의 제품의 구매와 경영방침에도 실력행사를 할 만큼 이미 그 규모가 거대해졌다는 얘기이다. 최근에는 마치 영국축구계의 골칫거리인 훌리건을 연상케 하는 사생팬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이제는 팬덤이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이해관계자로까지 성장(?)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이미 1920년대-1930년대의 미국의 대중문화현상과 그 사회적 효과를 분석할 때 문화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방식(ways of everyday life)으로 규정한바 팬덤은 이러한 우리의 일상적 삶의 방식이자 다양한 삶의 문화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way’가 아닌 ‘ways’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문화는 더 이상 예술가의 고상한 정신이나 신비주의적인 작품, 격식 있고 교양 있어 보이는 공연장에서 뽐내는 것이 아닌, 우리 일상생활에서 매일 매일 발생하고, 다소 골치 아픈 일들이 깔려있는 시끌시끌한 일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팬덤은 이러한 문화중 대중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현상중 하나로 오늘날 신자본주의 시대에서는 팬덤과 스타덤은 한 쌍으로 움직여야 같이 생존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대중문화안에서 스타일을 얘기할 때 스타일은 탈 정치적이고 탈계급적인 개인의 자유로운 개성정도로 간단히 읽힐 수도 있으나, 그 안에는 기성문화에 대한 식상함과 윤리적, 법적, 제도적 규범들의 획일성에 대한 반감이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예:강남스타일)이러한 스타일은 하나의 저항방식이며 청년문화가 부모문화와 지배문화에 대한 반발이라면 지금의 팬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기존 지배문화에 대한 거부의식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의 일상적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물론 변화된 역사적 조건의 요구라는 명제로 출발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대중의 일상적 삶과 문화 생산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기초한 대중문화 분석의 방법론을 시도하였으며, 리차드 호가트(Richard Hoggart)에 의해 1964년 설립된 영국 버밍검 대학의 현대 문화연구 쎈터(CCCS)가 그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80년대 이후, Soap Opera류의 TV 드라마, 대중가요, 연애 소설, 청소년 문화 등의 분석에 넓게 적용되고 있는 이 접근법은 대중문화 생산물을 대중이 무비판적이고 저급한 소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의 만족과 기쁨에 정당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고, 더불어 그러한 문화 생산물의 창조적 소비를 통해서 대중이 그들의 판단 하에 중요한 의미를 생산해내고, 필요한 경우에는 지배적 가치체계(가부장적 혹은 자본주의적, 혹은 인종중심적)에 효과적인 저항을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스튜어트 홀의 TV 수용자 분석, 딕 헵디지(Dick Hebdige)의 70년대 펑크족의 노동자와 청년 하위문화 분석, 존 피스크(John Fiske)의 TV 프로그램 분석 등이 있다.
딕 헵디지(Hebdige)의 말을 빌리면 “하위문화가 완전히 지배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그 지배문화와 항상 긴장관계를 유지한다”고 하였는데, 현재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의 팬덤은 지배문화와 긍정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또한 무비판적이고 저급한 소비문화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주체성과 주관을 가지고 그들이 우상으로 삼고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애정을 표현함과 동시에 때로는 따뜻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다소 그 수위가 과격한 경우도 있지만.)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팬덤을 예로 들면, 슈퍼주니어-엘프, 빅뱅-VIP, 샤이니-샤이니 월드, 동방신기-카시오페아, 2PM-핫티스트, 2AM–아이엠, 비스트-뷰티, 보이프랜드-베스트프랜드, 인피니트-인스피릿, 틴탑-엔젤, 씨엔블루-보이스, FT아일랜드-프리마돈나, 엠블랙-A+, BAP-베이비, B1A4-바나, 블락비-비비씨, SS501-트리플에스, 제국의 아이들-제아스, 신화-신화창조, 유키스-키스미, 달마시안-달메이트, 이승기–아이렌등의 남성 아티스트들의 팬덤집단이 있고, 걸그룹으로는 소녀시대–소원, 원더걸스–원더풀, 카라–카밀리아, 2NE1-블랙잭, 지나–지니, 에이핑크–핑크팬더, 씨스타–스타일, 달샤벳–달링, 포미닛–포니아, 보아–점핑보아, 티아라–퀸즈, Miss A-SAY A, 브라운 아이드 걸스–에버레스팅, 시크릿 –시크릿타임, 아이유–유애나, 쥬얼리–보석상자, 레인보우–이리스, 걸스데이–데이지, 써니힐– 힐러, 에프터스쿨-Play Girlz, 에프엑스–샤르망등이 활동하고 있다.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문화 현상을 일컫는 용어로 알려지고 있는 팬덤은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의 '팬(Fan)'과 지역 또는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덤(dom)'의 합성어로서, 팬덤이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팬덤문화라는 말이 탄생하였다. 이에 반해 스타덤은 인기 연예인을 뜻하는 명사 'Star'와 역시 지역, 나라 등을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로 스타가 갖는 지위나 신분을 의미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블락비’라는 아이돌 그룹은 소속사이름이 아예 ‘스타덤’엔테테인먼트이다.)
지금의 팬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배문화가 긴장의 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들에 의해 아이돌위주로 순위 프로그램의 등수가 매겨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2012년의 한국대중가요 종합차트 결산 시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천재지변과도 같은 성공도 전 세계에 퍼져있는 K팝 팬덤 현상이 일조하였음은 물론이다. 정치인들도 정치 산업에서의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스타가 돼야 대중들의 인기도를 확보할 수 있듯이 이제는 dom이라는 접미사가 대중문화현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시기이며, 그래서 팬덤문화에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아방송예술대학 엔터테인먼트 경영과 겸임교수 김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