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정부 근혜노믹스]기업환경, 공정경쟁에 방점… 경제민주화 속도·수위조절 ‘관심’

입력 2012-12-2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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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기를 기대했을 겁니다.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기업들에게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 아닙니까.”

여간해서는 정치 얘기를 입에 담지도 않았던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이 선거가 끝나자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같은 발언은 그간 재계가 바라보는 두 후보에 대한 극명한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은 이제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문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기업 정책을 표방해온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됨에 따라,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부활, 기존 순환출자 금지 등의 기업 옥죄기보다는 박 당선인의 ‘친 기업주의’을 바탕으로 한 점진적인 변화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순환출자 유지에 재계 일단 안도 = 당초 재계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기존 순환출자 금지였다. 순환출자는 계열사 A가 다른 계열사 B사에 출자하고, B사는 다시 C사에 출자하는 방식을 뜻한다. 현재 삼성, 현대차 등 상당수 그룹이 순환출자를 통한 계열사 지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의 등장으로 대기업은 경제민주화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합을 벌였던 문 전 후보는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순환출자제도를 전면 금지하고, 특히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3년 내 모두 해소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박 당선인은 신규 순환출자는 반대했지만 기존 재계의 순환출자 구조를 인정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경제개혁 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대규모 기업집단 중 순환출자가 존재하는 기업집단은 모두 15개로, 총 87개의 계열사가 100개의 순환출자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된 LG그룹 등을 제외하면 15개 그룹의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매각될 총 지분가치(지배주주의 지분 취득 예상가)는 9조6000억원으로 추정되며, 이중 현대차 6조1665억원, 현대중공업 1조5763억원, 삼성 1조2185억원, 롯데 1110억원 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지주사 전환을 전제로 한다면 이같은 비용은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나게 된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 불씨 남아 = 물론 변수는 남아있다. 박 당선인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영입을 통해 경제민주화 정책을 수립해 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기존 순환출자 해소는 박 당선인이 “기업의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제외하면서 마찰이 발생했다.

결국 선거 막판에 박 당선인은 김 위원장과 손을 맞잡았지만, 잠시나마 결별한 것은 향후 공약에서 경제정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진통의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부분은 당선 다음날 김 위원장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대선 다음날인 2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 당선인의 대선공약에서 제외된 기존 순환출자 해소 문제에 대해 “인수위원회를 발족하고 국정 전반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경제민주화는 빠질 수 없는 사안”이라며 “다시 한 번 자연적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질문에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만일 김 위원장이 인수위원장으로 임명되거나, 차기 정부에서 국무총리나 장관 등 경제 부문의 중책을 맡게 될 경우 불가피하게 수면으로 다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산분리·오너 사면권 제한에 촉각 = 이밖에도 재계의 걱정은 남아있다. 박 당선인의 금산분리 강화, 오너에 대한 사면권 제한 등이 그것이다.

금산분리의 경우 박 당선인의 공약에 따르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현행 9%에서 4%로 축소하고, 대기업 금융·보험 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상한을 현행 15%에서 향후 5년간 5%까지 줄인다는 방침이다.

가장 영향이 큰 곳은 삼성그룹이다. 현재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의 지분 8.47%를 가지고 있다. 의결권이 제한되는 경우 5%와의 차이인 3.47%에 대한 의결권을 잃게 된다. 또 모든 금융사가 최대주주는 물론 6촌 이내 혈족,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까지 심사를 받는 대주주 적격성 정기 심사도 재계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오너에 대한 사면권 제한도 첨예한 관심사다. 박 당선인은 “총수일가 불법행위에 대한 법 집행이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고, 대기업 지배주주,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을 공약했다.

SK·한화는 당장 총수가 횡령과 배임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14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대선 다음날인 20일 항소심에서도 1심과 동일하게 징역 4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이달 28일 1심 선고를 앞둔 최태원 회장의 SK그룹과 항소심을 앞둔 김승연 회장의 한화그룹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한 것도 재계에게 민감한 요소다. 공적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강화되면 재벌의 경영권 행사 차원에서도 적잖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내 최대의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9월말 기준 기금운용 주식투자 비중은 25.8%나 되며, 규모는 385조원에 이른다. 만일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을 강화할 경우 정부가 국민연금의 힘을 통해서 기업을 통제할 수 있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이밖에 현대차 등 노사관계가 첨예한 제조 기반 그룹들에게는 박 당선인의 강도 높은 노동분야 정책을 주목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고용 공시제 도입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금전보상제 실시 △최저임금 상향 및 위반시 징벌적 배상제 도입 △정년 60세 연장 △해고요건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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