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이 정치에 첫발을 디딘 건 지난 2002년이다. 당시 조 대변인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 대변인을 맡았다. 보수 정당 사상 ‘첫 여성 대변인’이라는 수식어를 단 채 정치를 시작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상위권 성적으로 졸압한 그는 1994년 법무법인 김앤장에 사법연수원 출신의 첫 여성 변호사로 입사했다. ‘첫번째’라는 직함 앞 머리말을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연이어 달았다.
그의 화려한 데뷔와 달리 정치 인생은 그치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2년 정치권에 깜짝 등장한 이후 6년 간의 정치 공백기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조 대변인은 김앤장 변호사와 한국씨티은행 부행장 겸 법무본부장을 역임했다. 조 대변인은 이 때 정치인으로서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걸 고려했다는 것이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그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지도부가 출마 의사를 타진했을 때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다 조 대변인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회인 ‘대한민국 국민성공캠프’에 합류했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리며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가 정치인의 행보를 다시 시작했을 땐 친박근혜계 의원으로 분류되지는 않았고, 그를 친이명박계로 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서 활동한 데다 정권 초기인 2008~2010년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으며 여성 최장수 대변인이란 호칭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 대변인은 제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는 쓴 잔을 마셨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가 됐다. 이후 그는 새누리당 제19대 총선 선대위 공동대변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후보 경선캠프 대변인, 그리고 당 대변인 겸 중앙선대위 대변인을 역임하며 박 당선인의 입 역할을 맡았다. 정치인으로서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조 대변인이 박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며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는 대선 기간 현장 유세장에서 박 당선인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면서 신뢰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박 당선인의 심중과 언행, 식습관까지 꿰고 있으면서 ‘친박 신주류’로 평가됐다. 여성 수행원이나 코디네이터가 없는 박 당선인에게 옷차림새에 대해 조언하는 등 남성 수행원이 할 수 없는 세세한 부분을 담당했다. 이런 신뢰감이 바탕이 돼 정치권에서는 박 당선인이 인수위원회 첫 번째 인선을 내기도 전에 “대변인은 조윤선이 될 것”으로 내다봤으며 예측은 적중했다.
박 당선인이 대선 선거 운동 기간인 지난해 12월 김지하 시인을 찾아갔을 때 조 대변인의 일화가 있다. 김지하 시인은 배석한 조 대변인에게 “박근혜 선생이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야. 당신이 잘해야 돼”라고 훈수를 뒀다.
조 대변인은 업무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선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테이프, 풀 같은 소소한 선거 물품을 직접 챙겼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만 빠져도 선거운동원들에게 “세심하게 챙겨달라”며 꼼꼼히 챙겼다. 현장에서는 주민이나 기자들의 요구를 직접 수첩에 적어 박 당선인에게 전달했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등 굳은 일을 도맡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조 대변인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똑 부러지는 언변으로 수 많은 기자들을 일일이 상대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기자들의 질의가 끝나기 전에는 먼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혜진 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 분과 간사가 발탁됐을 때 “그의 남편이 구남수 부산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이고, 이 간사가 동아대 로스쿨에서 민법 사례 강의로 유명하다”고 설명한 것도 조 대변인이었다.
인수위의 다른 대변인들이 ‘불통’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과 다른 행보로 재차 주목받고 있다.
조 대변인이 박 당선인 재임 기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내각에서 주요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제18대 국회의원 시절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오페라와 클래식에 대한 조예도 깊다. 조 대변인은 2008년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라는 책을 냈다. 총선 직전인 2011년에는 ‘문화가 답이다’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조 대변인은 4년 간의 의정활동을 통한 문화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조 대변인은 문화체육 부문에서 업적을 갖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특별위원회의 원내 특위위원으로 참여했다. 또 지난해 8월 미국 워싱턴의 주택가에 있는 대한제국 최초의 해외공관인 주미공사관 건물을 102년 만에 대한민국 정부 소유로 되찾아 온 데 있어 숨은 공신 역할을 했다.
여당 관계자는 “조 대변인이 아직 나이가 어려 초기 내각 인선은 아니어도 박 당선인 임기 내에는 중책을 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새누리당에서 통합형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의 고향은 서울이나 남편 박성엽 김앤장 변호사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를 졸업해 호남과 인연이 깊다. 또 박 당선인이 대변인으로 친이계인 박선규 대변인과 조 대변인을 임명한 것은 친이, 친박으로 갈려졌던 당을 통합, 화합하겠다는 의지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