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증시 상승세를 이끌었던 ‘전차(電車)군단’이 과속방지턱에 걸렸다. 엔화 약세와 수급 부담이 증시의 주요 먹구름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환율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정책적으로 엔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 “경기회복이 가시화될 때까지 윤전기를 24시간 쉬지 않고 돌리겠다”는 ‘아베노믹스’로 엔·달러 환율은 지난해 11월 9일 79.4엔에서 29일 91엔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이같은 엔저와 상대적인 원화 강세로 국내 주요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전기전자(IT)와 자동차는 환율에 따른 실적 변동이 크다. 업종 대표주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지난해 4분기 입은 환 손실만 6000억원대로 추정된다. 통상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은 3000억원(하나대투증권 분석), 현대차는 1%(현대증권 분석) 줄어든다.
이에 따라 주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 경쟁기업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올해 1월 이후 소니는 35% 급등했지만 삼성전자는 10% 떨어졌고, 토요타가 10% 오르는 동안 현대차는 10% 하락했다.
외국인의 ‘팔자’ 역시 IT·자동차에 집중되고 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지난해 12월31일 50.4%에서 28일 현재 50.3%로 줄었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28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 주식 3037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현대차 역시 같은 기간 외국인 지분이 45.9%에서 45.4%로 떨어졌다. 올해 외국인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3인방’에서 빼낸 자금만 7800억원이다.
이재만 동양증권 연구원은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바탕으로 일본 기업들의 수출가격경쟁력이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투자매력이 낮아졌고, 이는 외국인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조정 및 변화에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세계 최대 규모의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는 뱅가드의 벤치마크 변경도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뱅가드는 오는 7월까지 매주 4000억원가량의 주식을 순매도할 예정이다. 외국인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을 포함해 29일 유가증권시장에서만 5000억원 이상을 쏟아냈고, 올해 들어서는 1조7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회수했다.
그러나 이같은 ‘깜깜 장세’는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리적 저항선이던 엔·달러 90엔이 무너졌지만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대응을 고려하면 엔화가치가 더 급락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뱅가드 매물 우려도 어느 정도 풀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마주옥 키움증권 연구원은 “뱅가드의 경쟁업체인 블랙록의 신흥국 ETF 등이 국내 주식물량을 일정 부분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며 “엔화의 추가 약세 역시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