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운의 재계 인사이드] 특허괴물, 또다른 ‘손톱 밑 가시’

입력 2013-02-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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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MP3플레이어를 생산하는 한 중견업체의 아침은 급박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유럽으로 수출한 1만5000대의 제품이 물류 기지가 있는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세관에 압류됐기 때문이다.

압류된 이유는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 이탈리아의 특허괴물(특허트롤)인 시스벨은 3개월 전 이 회사에게 ‘MPEG1 레이어3(MP3)’ 표준에 관한 수십 종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대당 4달러의 로열티를 요구해 왔었다. 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곧 바로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현지 딜러들에게 도착했어야 할 물건이 볼모로 잡힌 상황에서 평등한 협상은 없었다. 이 회사는 시스벨 사무소가 있는 홍콩으로 달려가 로열티 계약서에 허겁지겁 사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후, 이 회사의 제품은 또 다른 특허괴물의 요구로 네덜란드에서 압류됐다. 역시 특허가 문제였다.

한 때 종주국이라고 자부했던 한국의 MP3플레이어 산업이 추락한 결정적 계기는 ‘아이팟’을 앞세운 애플과의 경쟁에서 진 것이 지목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늘어나는 특허 로열티로 갈수록 대당 수익성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특허괴물은 조직적이면서도 전략적이다. 당시 문제가 됐던 특허는 유럽은 시스벨이, 북미는 오디오엠팩이 공유하며 각각의 지역에서 권리를 행사했다. 그리고 특허괴물의 영향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의 이슈는 LTE(롱텀에볼루션)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미국 인터디지털은 전체 LTE 표준특허 가운데 14.7%에 해당하는 780건의 특허를 보유하며 단일 기업으로 가장 많은 특허를 갖고 있다. 인터디지털이 수많은 관련 특허를 전세계에 출원하는 이유는 특허공세를 위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터디지털은 한국에서만 40%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이 전 세계 특허괴물들의 집중적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11년 특허괴물로부터 42건을 제소 당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특허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비용을 충분히 투입할 수 있으며, 해외 특허기업을 인수합병(M&A)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삼성전자가 이달 4일 1억 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의 ‘삼성촉진펀드’를 조성해 초기단계 기업을 포함한 혁신 프로젝트 투자 계획을 밝힌 것이 그 일환이다. 실리콘밸리 벤처에 기술개발 자금을 제공하고 특허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인 것이다. 또 삼성전자는 10억 달러 규모의 ‘삼성벤처스 아메리카펀드’를 통해 글로벌 기업의 인수·합병과 투자를 하는 것도 역시 특허 확보를 위해서다.

문제는 앞서 열거한 사례처럼 많은 자금을 투입할 수 없는 중견·중소 수출기업들이다. 이들은 특허문제를 대처할 전문인력이 거의 없고 방어 경험도 일천하다. 특허괴물의 먹잇감으로 안성맞춤인 셈이다.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도 무차별적인 특허공세에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차기 정부가 이제 본격적인 출범을 앞두고 있다. 박 당선인은‘중견·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전환’을 강하게 주창하며 중소기업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대기업과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손톱 밑 가시’를 뽑는 정책과 더불어, 글로벌 시장에 걱정없이 진출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손톱 밑 가시’를 뽑아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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