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철이 든다는 것 - 국민희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기술표준정책과 주무관

입력 2013-02-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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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희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기술표준정책과 주무관
지난달 18일의 일입니다. 오랫동안 유학생활 중인 친구가 한국에 들어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었으므로 잡은 약속이었는 데도, 친구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고, 집으로 돌아갈 길은 더 아득해보였습니다. 체험된 것도 아닌, 예측된 고단함이 반가움을 퇴색시키는 것 같아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친구와 헤어질 때도 비슷한 미안함은 반복되었습니다. 친구는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과 조금 더 함께하기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저를 비롯한 모두는 친구의 서운함을 외면하고 돌아섰습니다. 물론 각각의 사연은 있었지만, 저의 기준으로는 예측되는 고단함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헤어지는 순간이 어려울 뿐, 친구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친구의 눈길은 잊히고 선택에 대한 확신은 커집니다. 막차가 끊기기 전 지하철을 탔을 때, 아침에 잠에서 깨었을 때, 만족할 제 모습을 저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경험을 믿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선택의 순간에, 현재의 충동보다 과거의 경험을 믿는 것.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만큼 경험이 많아지고, 충동보다는 경험을 믿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경험도 늘어날 테니까요. 덕분에 철이 들면, 실수나 후회할 일이 줄어듭니다.

그런 점에선 저도 조금은 철이 든 셈입니다. 친구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보다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셨을 때 고단했던 경험을 믿었으니까요. 실제로 저는 다음 날 아침, 후회 없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덜 피곤할 것이란 제 예상도 옳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점은 뿌듯하기보다 씁쓸하고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실수나 후회가 줄어든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비겁해지는 일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모르는 길을 가지 않는 것. 역시나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만큼 용기는 없어지고, 새로운 도전보다는 과거의 반복을 선택합니다. 덕분에 철이 들면, 줄어드는 실수 만큼 행복할 일도 줄어듭니다. 예측 가능한 결과에 만족하기에는 인간의 욕심주머니가 예측 불가능하게 크니까요.

문득 그날, 친구가 서운해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생각해보면, 헤어진 후 친구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던 것은 미안함 때문 만은 아닌 듯합니다. 서운함이 친구만의 감정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헤어진 사람은 오랜 만에 만난 친구가 아닌가 봅니다.

철이 없던 저, 후회의 횟수만큼이나 자주 행복했던 저와 이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철이 없던 저와 조금씩 이별하는 일인가 봅니다.

정말로,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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