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재계의 ‘기업경영헌장’, 모양내기에 그치지 않기를 - 김유진 산업부 기자

입력 2013-02-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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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헌장에 대해 좋은 의견 있으면 말해주십시오.” “의견 없습니다.” “큰 박수로 동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21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정기총회에서 기업경영헌장이 채택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0초였다. 기업에 동반성장과 윤리경영 등 사회적 책임을 담은 기업경영헌장 채택에 마음을 졸인 것을 생각해 볼 때, 기운 빠질 정도로 순식간에 통과됐다.

전경련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나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초석”이라며 기업경영헌장을 채택했다. 사회적 책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진정성이다. 이번 기업경영헌장은 매우 빠르게 처리됐다. 지난 1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를 통해 기업경영헌장을 채택하기로 결정한 이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헌장이 채택됐다. ‘속전속결’이라고 보면 볼 수 있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졸속 처리’ 같아 영 찜찜하다.

기업경영헌장 공청회에는 전경련의 회장은 물론 부회장도 참석하지 않았다. 참석한 사람들조차 제대로 된 헌장의 내용도 알지 못한 채 ‘기업이 이렇게 하면 좋겠다’라는 식의 의견만 내놓았다.

헌장의 내용도 ‘우려먹기’ 같아 불안하다. 지난 1996년 전경련이 발표한 기업윤리헌장과 내용이 엇비슷하다. 대중소기업 협력도 17년 전 헌장에 쓰여있는 내용이다. 누가 봐도 전경련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송나라의 학자 심괄은 겉 모양이 그럴 듯해도 기초가 약하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업경영헌장도 겉보기엔 그럴 듯하지만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기초가 어떨지 의심된다. 재계는 오래 전 채택한 기업윤리헌장을 이름만 바꾼채 기업경영헌장으로 다시 채택했다. 이번 기업경영헌장은 몇 년뒤 이름만 바꾼채 다시 채택되는 ‘공중누각(空中樓閣)’헌장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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