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의 유쾌통쾌]서울시의 과욕

입력 2013-03-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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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삼국지를 보면 승전가도를 달리다가도 항상 적(敵)을 전멸시키려 과욕을 부리면 되레 역공을 당해 다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오(吳)나라를 건국한 손권(孫權)의 아비 손견의 예도 그렇다. 손견은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와 전투를 벌이면서 승승장구했지만 과욕으로 목숨을 잃었다. 자신의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소수의 수하를 챙겨 나섰지만 적의 책략에 말려 현산(峴山)에서 온몸에 돌과 화살을 맞아 운명을 다했다. 그의 나이 겨우 37세의 일이었다.

결국 그의 아들 손책은 포로로 잡았던 유표의 수하 황조와 아버지 손견의 시신을 맞바꾸며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강화조약을 맺고 아무 성과없이 발길을 돌렸다. 과욕이 죽음을 불렀고, 당시 중국을 지배하며 횡포를 부렸던 동탁(董卓)에게는 근심거리 하나를 덜어준 꼴이 됐다.

중국의 고대 이야기를 현재 상황과 비교하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새정부 들어 공무원들의 과욕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특히 유통업계를 상대로 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도를 넘어섰다.

서울시는 최근 박원순 시장의 공약에 따라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대상으로 51종의 품목을 선정해 판매를 규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소주와 막걸리, 콩나물, 양파 , 두부, 계란, 갈치, 쓰레기 종량제 봉투 등 대부분 생활필수품이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등 골목상권이 상생할 수 있는 품목을 추려낸 것이라며 다음달에 공청회를 거쳐 국회에 법 개정 건의를 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현재 유통업계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다음달 부터 영업시간과 영업일수에 대한 법적인 제한을 받게 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중구난방이었던 규제를 통일해 혼란도 많이 잦아든 상태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번 조치로 유통업계는 또 한번 실의에 빠졌다. 서울시가 제시한 판매제한 품목이 매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대부분 농어민이나 중소기업이 납품하는 제품들이라 협력업체들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소비자들의 선택권도 문제될 수 있다.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고기는 대형마트에서 사고 야채는 재래시장에 가야하는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요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골목상권을 살린답시고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책입안자의 대부분이 정확한 시장조사나 소비자들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공만 내세우려 한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를 주적으로 삼고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대의만을 앞세운다.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기업은 대한민국 또 다른 산업의 축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 위주의 제조업이 부진할 땐 내수가 보완할 수 있는 엄연한 내수업종이다.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공을 염두에 두고 규제만 하려는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순간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은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퇴로를 열어두지 않고 대형마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가면 발톱을 세워 할퀴진 않겠지만 그대로 질식사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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