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삐딱선을 타다 - 나종주 성북세무서 부가세 과장

입력 2013-03-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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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한 켤레 아파트 재활용박스에 던져져 있다.
혓바닥 길게 빼놓고 죽은 짐승 같다.
구두 굽 비집고 나온 못은 탈골되어 삐딱하게 굽어 있다.
외골수로 한쪽으로만 기울던 구닥다리 사상,
얼마나 많은 길들이 이 구두를 갉아 먹은 것일까?
차갑고 축축한 발바닥을 감싸 안았던 삐딱선,
시멘트 바닥은 날 세웠던 구두 굽의 단호함을 꺾었을 것이다.
구두 밑창을 들여다 본다.
움푹 패어져 까칠해진 굳은살은 기우는 배를 곧추 세웠으리라.
흔들릴 때마다 배 멀미 막으며 괄약근을 죄었을 것이다.
아가리 열고 있는 재활용박스 속을 들여다보았다.
절지된 가방, 찢겨진 옷, 갈비뼈 잃은 우산… 패전군 부상병동 같은 커다란 삐딱선,
구두만의 블랙홀이 아니다.
변방으로 밀린 군상들이 사선으로 누워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나는 퇴박 맞은 구두를 낚아 올렸다.
구멍 난 바닥에 깔창을 깔고 삐딱하게 일그러진 구두 굽에 새로운 징도 박았다.
닻을 내렸던 난파선에 발을 담그자 삐딱선이 부릉거리며 구두끈을 조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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