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작은 나라 키프로스에 조건부 구제금융이 결정되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유로존 재정위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키프로스의 2011년 국내총생산(GDP)은 246억 달러(약 27조원). 그리스의 10분의 1, 이탈리아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경제 규모로 봤을 때 키프로스 사태가 글로벌 시장을 흔들 정도의 영향력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키프로스가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은 지난해 6월. 재정위기에 처한 그리스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키프로스 은행권의 손실이 늘어나면서 자본 확충이 불가피해진 영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키프로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는 올해 92%에 달할 전망이다. 2010년 61%에서 급속도로 악화한 셈이다. 그리스의 181%, 포르투갈의 123%보다는 낮지만 차기 뇌관인 스페인 96%와 맞먹는 수준이다.
주목할 것은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른 키프로스 사태를 대하는 EU의 리더십이다. EU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키프로스 은행에 손실 부담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앞으로 유럽에서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나라는 키프로스처럼 예금을 보장받지도 못하고 부담금까지 물어야 한다는 우려로 연결됐다.
투자자들은 이미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채무문제가 엄청난 파급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상태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역내의 만성적인 경제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리더십이 결여돼 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유럽 재정위기는 주변국에서 주요국으로 번지고 있다. 상황은 이전보다 더 심각하다. 스페인은 마이너스 성장이 만성화하고, 이탈리아도 산적한 문제에 직면했으며 프랑스는 경기 후퇴 조짐이 선명하다.
이 같은 현실은 실업률에 여실히 반영됐다.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 17국의 실업률은 11.9%로 실업자수가 2000만명에 육박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시민들의 반발은 한층 격해져 현 정권의 존속까지 위태로워진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982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채무위기는 부지불식간 다른 중남미 국가들을 집어삼켰다. 정치적 리더십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대규모 시위를 수반했다.
다행히 걸출한 지도자가 나타난 덕분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불가피한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얻는데 성공했다. ‘브래디플랜(Brady Plan)’ 실행이 가능했던 것도 리더십의 힘이었다.
문제는 유로존의 현 상황에선 이 같은 리더십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유로존 위기는 이미 4년째로 접어들었지만 EU집행위원회나 독일 당국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나라들에 재정통합만 요구하고 있다.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시장의 인내도 조만간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상대적 경제강국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확립하고 도입하는 정책에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 성장 회복 등을 담아야 한다. 더 이상 찻잔 속의 태풍이 전세계에 악영향을 미쳐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