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외이사 도입 15년] 겉으론 ‘감시역할’…속으론 오너독단 ‘방패막이’

입력 2013-04-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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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사외이사 논란, 주총 안건마다 찬성 무사 통과… 임기 3년 규정 불구 10년 자리 보존

최근 주요 상장사들의 주주총회가 이어지면서 사외이사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을 비롯한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사외이사 선임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등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금융지주가 주주총회를 통해 사외이사들을 재선임하는 안건은 무난히 통과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경제민주화 등 새 정부의 정책 논조가 바뀌면서 사외이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의 조짐이 느껴지고 있다.

◇사외이사가 뭐길래?

일반적으로 사외이사는 전문적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경영 전반에 걸쳐 폭넓은 조언과 전문지식을 제공해 회사 경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활동하는 비상근이사를 말한다.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사외이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본도 사외이사 제도와 비슷한 ‘외부감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국내의 사외이사제도는 오너나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과 독단적 결정을 감시·견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1998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을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사외이사제도가 본래의 취지인 경영권 감시 등 기본적 역할만을 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오히려 기업이 권력에 줄을 대는 가교 역할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공개된 지난해 주요 상장사 사외이사들의 활동 내용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98% 이상이 주요 안건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거수기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비난이 나오는 데는 사실 이들 사외이사의 면면을 보면 해당 기업의 사업분야와 연관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정치인과 권력기관 출신들이 대거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GS는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을, 롯데제과는 박차석 전 대전지방국세청장과 강대형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그리고 CJ는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을 새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밖에 SK텔레콤은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대우조선해양은 조전혁 18대 국회의원을 각각 영입했다.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사의 경우 사외이사 추천기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지만 추천 과정에서 경영진과 지배주주의 입김은 여전하다.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에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여기서 나오게 된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 사외이사 대부분이 최고경영자(CEO), 총수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거나 정부 관료 출신인 경우가 많다.

또한 현행 상법에는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3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연임 제한은 두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10년 이상 사외이사직을 맡는 사례도 나타난다.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인물이라면 회사 측과 이해관계가 형성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회사 측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기 쉽지 않다.

◇부적절한 후보 추천 사례 여전

하지만 우리보다 사외이사의 역사가 긴 외국에서는 경영에 도움이 된다면 경쟁기업 최고경영자를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경쟁기업인 애플의 사외이사로 수년간 활동했고 일본 토요타자동차 역시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부사장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사외이사의 기업 감시기능 약화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상장사 250곳의 사외이사 808명(지난해 4월 기준)을 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3명이 대주주나 회사,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계열사나 소송대리 및 법률자문 회사 출신, 채권단 출신 등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가 130명이었고, 나머지는 대주주나 경영진과 학연으로 얽혀 있었다. 그만큼 감시 기능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직업군으로는 교수 출신 등 학계가 246명으로 가장 많았고 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료 194명, 계열사 출신 등 재계 194명, 법조계 123명 등의 순이었다. 학계가 가장 많긴 하지만 고위 관료와 법조계 인사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전관예우’논란이 불가피하다.

사외이사제도가 고위 관료는 퇴임 후에도 후한 대접을 받으며 품위 유지를 하고 기업 입장에선 든든한 ‘뒷배경’을 확보할 수 있는 합법적 뒷거래로 전락한 셈이다.

때문에 각계에서는 사외이사제도의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행태는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이 유가증권시장 주요 400개사 중 351개사의 올 1분기 정기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한 결과 주총에 상정된 2342개 안건 중 16.8%(394건)에 반대가 권고됐다고 밝혔다.

반대 권고 안건은 대부분 임원 선임 건으로 ‘사외이사 선임’이 186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감사위원 선임(114건), 정관변경(27건), 감사 선임(24건), 사내이사 선임(17건) 순이었다.

반대 이유로는 사외이사·감사(위원) 후보의 장기 연임, 회사와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자, 최대주주 등의 특수관계인, 회사의 전 임직원 등으로 경영진과 독립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점이 주를 이뤘다.

또 낮은 출석률 등 불성실한 이사회 활동도 중요한 반대 사유였다. 낮은 출석률은 감사위원·사외이사 반대사유 중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즉 기본적 요건인 충실한 직무 수행은 물론이고 독립성마저 의심스러운 후보를 회사 측이 지속적으로 추천했다는 것이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대주주와 대표이사 등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을 개선해야 한다”며 “의결권 행사 전담부서를 두기 어려운 여건상 전문적으로 의안을 분석할 기관을 육성해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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