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 시간을 거꾸로 돌려야 사는 감독, 강우석

입력 2013-04-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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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필동의 시네마서비스 사무실은 고요 속에서도 들뜬 분위기가 역력했다. 1993년 강우석 프로덕션으로 창립한 회사인 만큼 강우석 감독의 기대작 ‘전설의 주먹’ 개봉을 앞둔 시점인 탓에 긴장과 기대가 회사 공기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마주 앉자마자 강 감독은 “정말 화가 납니다. ‘전설의 주먹’이 왜 청소년 관람 불가입니까? 감정의 울림이 너무 크다는 게 18세 관람가 판정의 이유에요. 설정 자체가 세답니다. 고등학생들이 조폭들과 싸우는 장면을 보면 아이들이 따라한다는 거예요”라며 열변을 토한다. 사실상 ‘전설의 주먹’의 관람등급 결과를 두고 시사회를 통해 미리 영화를 본 기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라는 반문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베테랑 강 감독조차도 심의를 의식해 폭력적인 장면을 자제한 탓이다.

영화는 고등학생 시절 각 학교 싸움짱이었던 전설들이 40대가 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TV 파이터쇼 ‘전설의 주먹’을 통해서 재회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점을 통해 어른들의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한다. 또 어느새 소통이 부재한 아버지와 딸 사이의 사랑을 피력하고 있다. “40대 남성 관객에게 적중할 것”이라는 예견을 한 강 감독은 “아버지가 보고 아들이나 딸에게 추천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소년 자녀들은 이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말 화나면 영화 개봉 해 놓고 다시 한 번 심의 신청하려고 합니다” 영화에 대한 애정만큼 그의 목소리를 결연했다. 그만큼 ‘전설의 주먹’에 대한 강 감독의 애정은 남다르다.

“내가 영화를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2년을 보냈어요. ‘이끼’와 ‘글러브’ 이후에 ‘나에게 영화를 그만두라는 사인이 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었습니다. 내 영화가 재미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데 대안이 없었어요. 2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사람들 만나서 술이나 먹고, 운동하면서 지냈지요. 그러던 중 ‘내가 임권택 감독처럼 예술 영화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서 그러나? 김기덕 감독처럼 상에 대한 욕구가 해소 되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이끼’나 ‘글러브’는 잘못 간 길이 아니라 한 번 가보고 돌아오면 되는 길이었는데, 그게 끝인 냥 거기서 해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때 만난 게 ‘전설의 주먹’입니다.”

영화감독으로서 가질 법한 예술성과 상에 대한 갈증을 갖고 고민한 그는 “좀 심오할 필요가 있지 않나? 너무 철없이 시간을 거꾸로 가는 것 같다”는 기자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바로 그거예요. 감독은 철들면 안 됩니다. 나는 청년인 채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했습니다”라고 답한다.

슬럼프의 끝에서 만난 작품인 만큼 ‘전설의 주먹’에 대한 강 감독의 열정과 애정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부성애 코드를 기본으로 학교 폭력문제, 사회 지도층의 폭력적 행태, 스포츠 불법 도박의 현실 등 담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거기에 덕규(황정민), 상훈(유준상), 재석(윤제문)이 전설이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어느 하나 놓고 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결과 러닝타임은 2시간을 훌쩍 넘긴 153분이 됐다.

“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뺄 부분이 있으면 콕 집어서 얘기 해달라고 하는데 또 다 재미있대요. 기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이야 영화를 분석하기 때문에 러닝타임이 티처럼 느껴지겠지만 관객들은 이야기가 재밌으면 끝날까봐 조마조마하거든요. 그런 영화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물론 물의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작품이기는 해요. 하지만 예민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한테 함부로 대하는 것, 괴롭히는 것, 기분 나쁘게 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하고 싶었어요. 서로 좀 보듬어주고, 나눠 먹는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전설의 주먹’을 통해 강 감독은 ‘예전의 얼굴로 돌아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 말은 즉 그가 신명나 있다는 이야기다.

“다음 작품은 진짜 나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전설의 주먹’ 하면서 코믹 코드 촬영 때 재미있었거든요. 무조건 아무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믹 영화를 찍을 생각이에요. 비장미 하나 없이 방방 뜨는 영화를 신이 나서 찍을 거예요. 지금 코미디 시나리오를 속속 받아보고 있습니다.”

사진 양지웅 기자 yangd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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