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엔저 공습이 우려되는 이유 -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13-04-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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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4일 열린 통화정책위원회에서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매월 7조엔 규모의 엔화를 찍어 자산을 매입하겠다는 이번 조치는 기존의 자산매입 규모인 3.4조엔은 물론이고 시장의 예상치를 1.5조엔이나 상회하는 엄청난 규모라고 한다. 자산매입 대상도 대폭 확대해 현행 만기 3년 이하의 국채 위주에서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위험자산도 매입 대상에 포함했다.

자산매입 총액한도를 폐지한 것으로 보아 필요시 일본 중앙은행의 돈풀기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엔화 약세는 같은 해 12월 양적완화에 중독된 아베정권이 출범하면서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9개월간 엔화가치는 미 달러화에 대해 20%가 넘게 떨어졌다. 반면 우리나라 원화는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로 최근 환율이 상승하긴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작년에 비해 여전히 미 달러화 대비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는 원/엔 환율이 급락하는 원고·엔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조치는 원고·엔저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부추기는 계기가 될 소지가 높다.

외환시장에 원화강세, 엔화약세 기대가 형성되면 엔화자금을 차입하여 원화자산에 투자하려는 엔캐리 거래가 성행할 수 있다. 엔캐리 투자자는 엔화로 빚을 지기 때문에 자신의 채무를 엔화로 상환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엔화 대비 원화가치의 상승이 예상되면 원화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투자자는 환차익을 통해 자신의 엔화채무를 갚고도 남을 만큼의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원고·엔저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면 원화자산에 투자하려는 엔캐리 유인이 증가하여 국내 금융시장으로 유입되는 엔캐리 자금이 크게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엔캐리 자금의 국내유입 확대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과거 엔캐리 거래가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였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캐리거래가 성행하는 금융시장에서는 자산가격이 “계단으로 올라가다가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경향을 보인다. 캐리자금의 유입은 서서히 진행되지만 이의 청산은 일시에 대폭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엔캐리 자금의 국내 유입이 은행차입이나 채권투자 형태로 이루어질 경우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의 자본유입 중 은행차입과 채권투자의 변동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엔캐리 자금의 국내 유입이 가속화되면서 외환시장의 원고·엔저 현상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해외시장에서 일본과의 경쟁이 심한 우리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50%에 육박하여 G-20에 속해 있는 여느 신흥국보다도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 간 유사한 수출구조로 인해 우리나라 수출의 가격경쟁력은 엔화환율의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실제로 금액 기준 우리나라의 30대 수출 품목 중에서 절반 이상이 엔화환율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경제 상황이 추경예산을 통해 경기부양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낙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대규모 엔저공습으로 수출마저 급감하면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3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고 외화자산이 외화부채보다 많은 순채권국이어서 당장 외화유동성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GDP 대비 외채 비중이 높아 경기부진이 장기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경제 성장세 둔화가 지속되면 그만큼 우리나라의 소득이 줄어들어 외채상환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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