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창조경제의 조건-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입력 2013-04-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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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워싱턴DC, 텍사스주 오스틴, 시애틀. 이 미국 도시들의 공통점을 아는가. 이들 지역은 예술가, 음악가, 동성애자들이 많이 산다. 또 이른바 첨단기술 산업들이 발전해 있다. 이런 첨단기술 산업들이 주는 고용과 고임금의 기회, 삶의 질을 누리려는 고학력층 인재들이 많이 산다.

이들 지역은 저명한 지리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대표적인 ‘창조 도시’로 꼽는 미국의 도시들이기도 하다. 창조도시는 지난 20~30년 전부터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해 선진산업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해내며 지속적 발전을 해나가는 도시를 말한다. 이런 창조 부문의 일자리로 플로리다 교수는 과학과 엔지니어링, R&D, 기술기반 산업, 미술 분야, 음악, 문화, 심지적인 일과 디자인 분야, 또는 보건·금융·법률 등 지식기반 전문직 분야 등을 들고 있다. 이 창조 부문 일자리는 미국 내 일자리의 약 30%를 차지하며 이들 일자리에 돌아가는 임금은 전체의 47%에 이른다. 그만큼 고부가가치 일자리라는 사실이다.

플로리다 교수는 창조도시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크게 3T를 들고 있다. 여기서 3T는 기술(Technology), 재능을 가진 인재(Talent), 관용도(Tolerance)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부가가치 창조경제 시대에 걸맞게 기술과 인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잘 수용되는데 관용도에 이르면 많은 이들이 갸우뚱하게 된다. 관용도는 여러 문화적, 예술적 개방성과 생각과 가치관, 성적 취향 등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개방성과 다양성을 갖춘 지역일수록 재능을 가진 이들에 대한 편견 없는 ‘문턱 낮은 도시’가 되고, 그들이 가진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을 꽃 피우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개발시대의 ‘한 방 신화’에 기대는 한국의 경제성장 전략은 창조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가리지 않고 각종 경제자유구역이니 혁신도시니 국제자유도시니 하는 이름들을 내걸었지만 각종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창조경제 시대의 경제 발전은 1970~1980년대 개발연대처럼 한 방에 이뤄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경제구조를 만들고 그렇게 조성된 양질의 생활환경 속에서 인적 자원과 자본, 기술, 문화환경 등이 결합할 때 생겨난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도 생겨날 수 있다.

그런데 ‘개발 만능주의’ ‘한 방 신화’에 매달려온 한국의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핵심 국정 목표로 내세운 창조경제의 의미를 체득하기란 기대 난망이다. 이러다 보니 창조경제를 이해하는 관료와 정치인들이 없어서 서로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사실 수십 년 동안 정반대 방향의 행정 관행과 사고방식에 젖어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창조경제’를 하라니 될 리가 있나. 더구나 ‘창조경제’는 누가 시키고, 거기에 맞춰 따르는 식과는 정반대의 경제 개념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 하듯이 대규모 재정을 직접 투입해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해 자연스러운 문화 및 산업 생태계가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역대 어떤 정부의 정치인과 관료들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들에게 창조경제를 하라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될 리가 없다. 문화정책이라고 하면 예술가들을 키우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라 창작스튜디오라는 건물만 짓는 사람들, 홍대 앞을 산업뉴타운으로 지정해 오히려 가난한 예술가들을 내쫓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창조경제는 머리로 이해하기 이전에 감성과 감각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그나마 추진할 때 가능한 일이다. 정말 창조경제를 하고 싶다면 민간의 창조적 감수성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포진시켜야 한다. 그 포스트의 주요 인사들은 지금 국장급 관료들보다 평균 20년가량은 젊은 세대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는 죽었다 깨나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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