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미국, 테러의 두 얼굴- 민태성 국제경제부장

입력 2013-04-24 10:54 수정 2013-04-2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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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성 국제경제부장
이라크에서 지난 20일 열린 지방선거는 각종 폭력 사태로 얼룩졌다. 선거 전일인 19일까지 자살폭탄 테러 등으로 숨진 사람만 120여명에 달한다.

이번 선거는 전국 단위로는 지난 2010년 3월 총선 이후 첫 선거였다. 미군이 철수한 지난 2011년 이후 자체 치안 인력만으로 치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사담 후세인만 없어지면 안전할 것 같던 이라크는 여전히 폭력과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현지에서는 이라크전 당시 사망자보다 이후 테러와 사형으로 죽은 사람이 더욱 많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전을 시작한 2003년 이후 이라크에서 자폭 테러로 인한 사망자만 1만3000명이 넘는다는 집계도 나왔다.

지난 10년 동안 이라크의 사망자 중 10분의 1은 테러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전체 부상자 가운데 테러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5%가 넘었다.

테러 희생자 대부분이 부녀자를 포함한 민간인이라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테러가 일상화한 이라크에서는 이미 테러의 배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거의 매주 이라크발 테러 소식이 전해지지만 주요 외신에서도 단신 기사로 짧게 처리할 뿐이다.

지난 15일 미국 전역이 충격에 빠졌다. 전통 있는 보스턴마라톤대회 현장에서 폭탄이 터졌다. 체첸 출신의 형제는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 그들의 만행으로 3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여명이 다쳤다.

9·11 참사를 겪은 미국인들이 다시 공포에 휩싸인 것은 물론이다.

이번 테러의 특징은 미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미국 내부의 테러라는 사실이다. 테러 이후 ‘자생적 테러’ ‘외로운 늑대’라는 단어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용의자인 타메를란 차르나예프와 조하르 형제는 체첸계로 2002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형인 타메를란은 2009년 전미 아마추어 권투 챔피언십 4강전에 출전하기도 한 복서였다.

동생 조하르는 2012년 시민권을 받은 ‘진짜’ 미국인이다. 그는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트머스 메사추세츠대학에 다니던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청년들은 무엇 때문에 무자비한 테러범으로 변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이슬람 출신 젊은이들이 ‘이슬람 전사’로 변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테러하면 흔히 떠오르는 노동자나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2009년 텍사스에서 13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테러범은 팔레스타인계 의사였으며, 3년 전 뉴욕에서 차량폭탄 테러를 시도했던 파키스탄계 청년은 미국에서 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친 인재였다.

이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과 이민자로서의 고립감에 시달리며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를 키우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에 왔지만 결국 ‘아메리칸 지하드 전사’들로 인생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라크 테러와 보스턴 테러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은 미국의 위선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매주 수백여명의 민간인들이 테러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지만 미국에게는 이미 남의 얘기일 뿐이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WMD)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인정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미국도 일본 못지않게 과거사를 왜곡하고 있는 나라일 수 있다.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하지만 테러가 종식되기는커녕 미국 국민들은 바로 옆에 사는 이웃을 테러리스트로 경계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보스턴 테러 이후 미국 정부의 행보도 적절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차르나예프 형제가 아직 진범으로 밝혀지지도 않았지만 이들은 이미 정부와 미디어에 의해 반쯤 악마화했다.

미국인이지만 이슬람권 출신이라는 이유로 절반만 미국인처럼 대우받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무거운 짐을 얻게 됐다. 내부에 의한 테러로 이민법 개혁 문제는 다시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민자를 진정한 미국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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