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기념되지 못하는 노동절- 한성안 영산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3-05-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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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인간의 활동이며 그 최종 목표는 인간을 지향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이 가장 불온시하지만, 인간만큼 경제학에서 중요한 주제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나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경제학은 인문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학이 관심을 가져야 할 몇 가지 주제 중 인간의 본질에 관한 얘기로 눈을 돌려 보자.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장 익숙한 것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일 것이다. 그는 인간을 함께 모여 사는 ‘사회적 존재’이자 ‘정치적 존재’로 인식하였다. 더 일반적인 정의로는 데카르트가 경이롭게 관찰했던 것처럼 호모사피엔스, 곧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임마누엘 칸트에게 그러한 정의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숭배한다. 곧, 인간만이 도덕과 정의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매우 버겁게 느껴지지만 ‘도덕적으로 사고하기’가 인간의 고유한 성질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러한 고상한 비물질적 정의들이 꽃피자면 생존이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 생존은 최소한의 물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인간은 생존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생존을 넘어 ‘생활’하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 인간은 보다 ‘좋은 삶’을 희구한다. 그러한 희망은 자연이 제공하는 빈약한 물질로 달성될 수 없다. 물질로 환원될 수 없지만 좋은 삶은 어느 정도 적절한 규모와 종류의 물질을 필요로 한다. 좋은 삶에 필요한 물질을 얻기 위해 인간은 자연에 자신의 노동력을 가한다. 이처럼 우리는 노동을 통해 비로소 생존을 넘어 생활할 수 있으며, 노동을 통해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 노동은 인간의 좋은 삶에 있어 필수적인 활동이다.

좋은 삶을 위해 지출되는 인간의 노동은 육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의 앙상블이다. 근력만 작용하면 소나 말의 동작과 다르지 않아 인간의 좋은 삶에 유용한 것들을 새롭게 ‘창조’해 내지 못할 것이요, 반대로 정신력만으로는 유용한 것들을 아예 ‘제작’조차해내지 못할 것이다.

리처드 세넷 교수도 ‘장인-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에서 “장인의 모습을 단지 육체적인 기능으로만 설명하지 마라”고 지적한다. 곧, 제작하는 손은 생각한다! 그것은 ‘어떻게’와 함께 ‘왜’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노동으로부터 사유 활동을 분리하고자 하였으나 인간의 노동 과정에서 두 능력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은 동물의 근력으로 환원되어 버릴 정도로 결코 비천하지 않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좋은 삶에 이를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와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이러한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였다. “인간은 의식에 의해서, 종교에 의해서, 그 외에도 의욕하는 것 때문에 동물과 구별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생계수단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을 동물과 구별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바로 대상하고 있는 세계를 가공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이 유적 존재임을 현실적으로 입증한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인 것이다. 노동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 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지되었다.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을 ‘제작하는 존재’, 곧 호모 파베르로 정의하였고 제도경제학자인 소스틴 베블런은 도구와 기술을 발명케 하는 ‘제작본능’이 인간의 본능으로 진화 과정에서 선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리처드 세넷 교수도 위의 책에 방대한 증거 자료를 도입함으로써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임을 입증해 보였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일 뿐 아니라 결코 비천하지 않는 노동, 나아가 좋은 삶에 기여하는 노동이 인간의 모든 활동 중 가장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기념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동처럼 멸시 당하는 활동도 없다. 그것은 ‘노가다’들의 비루한 동작일 뿐이다.

나아가 노동은 타도되어야 할 적이며 쓰다 버려야 할 물건일 뿐이다. 365일 중 하루만으로 그것의 본질을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했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기념은 고사하고 최루액을 뒤집어쓰고 노동의 주체들이 이리저리 쫒기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노동절을 아예 ‘근로자의 날’로 바꾸어 버렸다. 노동이 얼마나 증오스러웠으면 그랬을까?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문화’로 고착되어 버린 노동에 대한 극도의 증오, 그리고 기념되지 못하는 노동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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