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중소기업에 환헤지 옵션상품 키코(KIKO)를 판매해 놓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계약의 조기청산을 강요했다면 기업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9일 반도체제조 관련 업체인 아이테스트가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액 109억원과 조기청산으로 발생한 80억원을 합해 총 189억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소 취하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한국씨티은행이 아이테스트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도 법적책임을 피하기 위해 소 취하 통지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불공정한 법률행위”라며“부채가 많고 운영자금이 부족하던 아이테스트가 자발적으로 조기 청산을 위해 거액을 대출받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아이테스트는 당초 지난 2008년 키코 계약을 맺었지만 환율 급등으로 손해를 보자‘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씨티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씨티은행이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겠다고 제안해 아이테스트는 소송을 취하하는 한편 다른 민·형사상 책임도 면제키로 했다.
이후 불과 며칠 만에 씨티은행은 ‘키코 계약을 즉시 청산하지 않으면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돌변, 아이테스트를 압박했다. 결국 아이테스트는 키코 손실과 조기계약 청산으로 인해 258억여원을 지급, 막대한 손해를 입고 다시 소송을 냈다.
씨티은행측은 “여신지원을 조건으로 소송 취하를 제안한 것은 아이테스트로 은행에서 조기청산을 강요한 사실이 없다”며 “아이테스트는 당시 자금 지원을 받아 키코계약을 청산했고 소 취하 합의와 중간청산 이후 3년 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씨티은행은 곧 항소할 예정이다.
아이테스트는 이번 소송에서 1억원만을 청구한 상태다. 이후 상급심에서 청구액을 늘리고 이번 판결이 유지된다면 189억원의 손해배상액을 받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