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불평등의 대가-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입력 2013-05-1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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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저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 경제학자인 조셉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를 읽었다. 이 책은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정치적 기득권을 강화하고, 그 사회정치적 기득권이 어떻게 다시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강점이다. 한국에서도 그 같은 양상은 낯설지 않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에도 정경유착에 의한 이권 주고받기가 횡행했는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더욱 교묘하게 그들만의 이권 주고받기를 지속하고 있다. 시장원리든 정부개입주의든 기득권에 유리한 방식들만 선택적으로 결합해 받아들인 결과 한국은 ‘기득권 만능 사회’가 됐다. 예를 들어, 분양가 자율화 도입과 함께 폐지하기로 했던 반시장제도인 선분양제를 허용함으로써 공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주택시장을 만들어 주택 폭등을 자극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들 경제적 기득권을 가진 사회경제적 강자들은 독과점과 담합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서도 약자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경쟁을 강요한다. 약자에게만 한없이 가혹한 경쟁의 이중구조를 만든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통신·건설·유통 등에서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사실상 독과점과 담합, 불공정 경쟁을 일상화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부품을 조달하는 하도급 업체에게는 생사를 건 납품단가 인하 경쟁을 벌이게 하고 불공정거래를 요구한다. 상당수 건설업체는 대물변제라는 형식으로 미분양 물량을 하청업체에게 떠넘기고 임직원의 친인척까지 동원해 형식상으로 미분양을 털어내면서 미분양이 없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그 결과 경제적 강자들은 공정한 시장경쟁 상태에서보다 늘 많이 가져간다. 하도급 업체와 같은 '을'과 일반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그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는 것이다.

이 같은 기득권 구조를 뒷받침하는 세력들은 한국사회의 주요 영역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및 관련산업에 형성된 모피아나 토건족은 한국경제의 자원 배분과 정책 및 제도 결정을 좌우하고 있다. 재벌에 매수된 검찰과 법원 등은 재벌과 상류층의 구조적 불공정 게임에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 재벌 광고주들이 던져주는 광고에 눈이 먼 기득권 언론들은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와 같은 거짓말로 국민들을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재벌 대기업의 용역을 받아 일하는 다수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이들 언론의 보도나 정부의 결정에 기꺼이 권위와 (허구적인) 논리적 토대를 제공한다. 이렇게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 끈끈하게 ‘인지 포획’이 일어나고 1%를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내는 ‘규제 포획’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는 막대한 일반대중의 이익을 희생해 상류층의 독점적 이익을 보장하는 불평등 사회다. 재벌 계열사들에게 국가가 쥐꼬리만한 면허세를 받고 ‘황금알 낳는 거위’인 면세점을 허용해주거나 각종 민자사업과 재정사업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에게는 막대한 퍼주기를 지속하도록 하면서도 OECD국가 가운데 복지예산 비중이 가장 낮은 현실을 왜곡하며 ‘복지로 망한다’고 협박한다. 최소 주거여건에 미달하는 가구가 13%에 이르지만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주거복지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가진 자들의 집값을 떠받치기 위한 각종 세금 감면책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식으로 상위 1%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와 정책, 법률들을 누적시켜온 결과 한국의 불평등은 스티글리츠가 우려하는 미국 이상으로 극심해졌다. 이 같은 불평등을 반영해 사회는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

다행히도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재벌 개혁과 복지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대선 1번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국정 목표에서 빼버린 박근혜 정부에 얼마나 기대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미 시대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를 완전히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국회에서 정년 60세 연장안이 통과되고, 재벌 경제력 집중 견제와 공정거래 질서 강화를 위한 몇가지 입법안이 통과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지금의 불평등이 바꿀 수 없는 흐름이 아니라 정치적, 정책적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낙관적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다른 세상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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