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눈물]‘깔때기’ 업무·생명 위협… 복지공무원 10명 중 셋 “자살 충동”

입력 2013-05-30 10:38 수정 2013-05-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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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애인에 양 육수당까지 담당… “내게 휴식은 없다, 아침이 두렵다”

지난 15일 오전 1시 46분. 충남 논산시 덕지동 인근 호남선 철길에서 30대 남자가 익산발 용산행 새마을호 열차에 투신했다. 논산시청 사회복지담당 김모(33)씨였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되며, 직장 일이 많아 힘들어 하는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충남 사회복지직 공무원 시험에서 1등을 한 재원이다. 지난해 임용된 김씨는 주로 장애인복지시설을 지원·관리하는 업무를 했다. 김씨를 포함해 정규직 3명과 계약직 직원, 공익 등 5명이 논산시의 등록 장애인 1만600여명을 모두 맡아왔다.

김씨는 사고 전인 지난 7일 일기장에 “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 쌓여만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고 고충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세상을바꾸는 사회복지사?우리복지시민연합 회원들은 지난 3월 21일 사회복지사의 연이은 자살과 관련,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정부의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한 회원이 ‘사회복지사에게도 복지를!’이란 피켓시위를 벌였다. (사진=내가만드는복지국가)

◇복지대상자 157% 증가, 담당은 4.4% 고작

사회복지 공무원의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씨를 포함해 올해만 벌써 4번째다.

정치권이 너도나도 복지국가, 복지사회를 표방하는 사이 담당자가 맡게 된 복지 업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기초생활수급자만 대상으로 하다가 점차 일반 노인, 장애인까지 확대되고 최근에는 양육수당 도입, 학비지원 등의 사업까지 떠맡다 보니 업무에 업무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복지정책은 45%, 복지제도 대상자는 157.6%가 증가한 반면 사회복지 공무원은 고작 4.4%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대부분이 여성(74%)인 복지공무원의 육아휴직 충원 실적도 67% 정도에 그쳐 정원에 비해 실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과다한 업무를 줄이기 위해 만든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 e음)의 개통은 오히려 사회복지 공무원들에게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통합관리망이 도입되면서 13개 중앙부처, 296개 복지업무가 ‘사회복지 범정부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일선 복지공무원들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미 손으로 작성된 별지신청서 등을 일과 후 일일이 전산망에 입력하는 잡무로 이어져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 수급 기준에 불만을 가진 탈락자들로부터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사회복지계는 지난 3월 비상시국 선포에 이어 지난 16일 총 23개 단체가 연대한 ‘사회복지사 자살방지 및 인권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명의로 성명을 내고 “연이은 사회복지사의 목숨을 끊는 사고는 사회복지 전달체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또 “복지와 관련 없는 일반행정 업무 등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만큼 철저한 직무 분석과 인력 진단을 통해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명 중 3명 자살충동… 우울증은 65%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의 스트레스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무원노조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함께 실시한 사회복지직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 65%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29.2%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회복지사들 역시 열악한 대우와 함께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서동명 교수는 지난 27일 서울지역 사회복지사 755명에게 물은 ‘서울시 사회복지사의 근로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처우 개선 마련 등을 촉구했다.

우선 근로조건(급여, 근로시간, 근로강도, 복리후생 등)은 5점 만점에 2.4점으로 만족도가 낮았다.

근로조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10점 만점에 6.9점의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7점 이상의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보이는 비율은 전체의 66.3%로 나타났으며, 10점의 경우도 9.1%나 차지했다.

서비스 대상자로부터의 폭력이 스트레스의 주요인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60.3%인 455명이 월 1회 이상 언어 폭력을 겪었으며, 절반이 넘는 56.8%는 월 1회 이상 정신적 괴롭힘을 당했다.

신체적 폭력을 받은 사회복지사는 19%에 달했으며, 폭력을 경험한 사회복지사의 20% 이상은 연 4회 이상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겪은 폭력으로는 발길질과 주먹질이 7.7%(58명), 7.5%(5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도구나 흉기를 이용한 위협 5.6%(42명), 뺨때리기 3.4%(26명), 머리채 잡기 3.3%(24명) 등의 순이었다.

특히 도구나 흉기로 직접 가격을 당한 사회복지사도 11명으로 나타나 매우 심각한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이외에도 더러운 물건을 자신의 몸에 닦거나 침을 뱉는 등 모멸감을 느꼈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사회복지 전달체계 구조적 문제 지적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선수경 회장은 지난 20일 비대위 긴급대책회의에서 “베르테르 효과처럼 잇따라 발생하는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복지전달체계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며 “13개 부처 292개 복지업무가 인력수급 대책이나 전문적 진단 없이 사회복지 공무원에게 쏟아져 ‘깔때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복지교육협의회 조원일 위원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직접 전달하는 사회복지사가 고통을 겪음으로써 전방위적으로 사회복지 서비스에 구조적 모순이 벌어지고, 급기야 그 모순이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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