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경기 수원의 태광컨트리클럽에서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챔피언스 투어(시니어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최종 2라운드에서 국내 최다승(43승) 보유자 최상호(58)와 시니어 투어계의 ‘황제’ 최윤수(65)가 5언더파 139타로 공동 1위에 올랐다.
늦가을 필드는 노랗게 변색돼 있었다. 특히 그린 주변은 잔디가 바닥에 붙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초겨울 날씨 치고는 찬바람도 강했다. 기술적인 샷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두 ‘노병’은 강했다. 감각적인 숏게임과 노련미로 연장에 연장을 거듭했다. 두 선수는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KPGA는 두 선수를 불러 공동우승을 제안했다. 결국 두 선수의 승부는 공동우승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최상호는 우승상금 전액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협회에 쾌척했다.
당시 우승상금은 1500만원, 2위는 700만원이었다. 공동우승으로 두 선수는 1·2위 상금 총액을 똑같이 반으로 나눠 가져야 했다. 즉 1100만원을 쾌척한 셈이다.
국내 프로골프투어에서 우승상금 전액 쾌척은 이례적인 일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최상호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미 국내 프로골프대회에서 43승을 휩쓴 최상호가 ‘푸대접’ 시니어 골퍼를 대신한 무언의 항의였다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시니어 투어 참가 선수들은 자신들의 경력과 노력에 비해 ‘턱없이 적은 상금’이라는 불만의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올 시즌 KPGA 챔피언스 투어는 총 11개 대회로 총상금은 6억5000만원(대회당 5900만원)이다.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대회는 6월 26일부터 이틀간 전남 화순의 무등산컨트리클럽에서 열리는 루마썬팅배 KPGA 시니어선수권대회(1억원)를 포함 3개 대회다. 대회당 평균 8억2000만원을 놓고 샷 대결을 펼치는 KPGA투어에 비하면 무려 19배나 적다.
이달 6일 충북 충주의 킹스데일 골프클럽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 MFS 챔피언스 투어 시니어 골프대회는 총상금이 2000만원에 불과했다. 최윤수는 이 대회 우승상금으로 300만원을 받았고, 5위 조태호(69)는 110만원을 획득했다. 대회 출전 경비를 감안하면 5위 안에는 들어야 적자를 면한다는 결론이다.
스폰서 풍년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도 시니어 투어 ‘찬밥’은 면하지 못했다. 올 시즌 KLPGA 볼빅·센추리21CC 시니어투어는 총 10차전이 열리며, 대회당 4000만원씩 4억원 규모다. 대회당 우승상금은 800만원, 8위 안에 들어야 100만원 이상을 획득한다. 대회당 6억3000만원이 걸린 정규투어와 비교하면 15배 이상 적다.
그러나 같은 시니어투어라도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대접이 다르다. 올해 PGA 챔피언스 투어는 총 27개 대회에 5275만 달러(600억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대회는 리버티 뮤추얼 인슈어런스 레전드(4월)와 칸스털레이션 시니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6월)으로 총상금 270만 달러(30억5000만원)다. KPGA 챔피언스투어(연간 총상금 6억5000만원)의 약 100배 규모다.
LPGA 시메트라투어(시니어투어)는 15개 대회 162만 달러(18억3000만원)에 불과하지만, KPGA 챔피언스 투어의 약 3배 규모다. 대회당 10만8000달러(1억2000만원)다.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대회는 6월 21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포윈즈 인비테이셔널로 15만 달러(1억7000만원)다.
나경우 PGA마스터 프로는 “골프 저변 확대와 전통·스타부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지금으로서는 배상문과 같은 좋은 선수가 많이 배출돼 정규투어부터 활성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