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용어의 함정에 빠진 창조경제- 김경철 부국장 겸 정치경제부장

입력 2013-06-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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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코코넛과 야자수 열매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동남아를 여행할 때, 현지 안내인이 해변에 훤칠하게 늘어선 야자수를 가리키며 이렇게 물어온 적이 있다. 정답은 허무했다. 야자나무에 열리는 열매의 이름이 코코넛인 만큼 표현만 다를 뿐 실체는 100% 같다는 설명이었다.

박근혜정부는 최근 각종 경제대책을 봇물처럼 쏟아내며 ‘근혜노믹스’를 본격 가동했다. 범정부 차원의 굵직한 경기활성화 방안만 4월 1일 발표한 ‘주택시장 정상화종합대책’에서 6월 4일의 ‘창조경제 실현계획’까지 8건에 달했다.

가장 관심이 쏠렸던 발표는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에 맞춰 나온 창조경제 실천 계획이었다. 창조경제는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새 정부의 국정기조인 ‘경제부흥’ 을 실현할 양대 국정목표다. 안타깝게도 그 엄청난 위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개념조차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왔기에 더욱 신경이 갔다.

하지만 창조경제의 구체안까지 발표된 지 일 주일가량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창조경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더욱 답답한 노릇은 창조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앞으로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경제현장에 혼선을 계속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방법은 없을까? 우선, 용어의 함정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창조와 경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널리 통용되는 일반 추상명사들이다. 그런데 두 명사를 바로 붙이면 사자성어처럼 변신하면서 간단치 않은 인상을 풍긴다. 굉장한 스토리가 있는 고사성어나 정말 새롭고 복잡한 개념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명사와 명사가 결합하면 앞의 명사가 형용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경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경제, ‘평화통일’은 평화적인 통일 등의 줄임말이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창조적 또는 창조적인 경제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창조경제에 대한 장황하고 제멋대로의 해석이 ‘창조적 경제의 줄임말’이란 수준의 간단명료한 설명으로 대폭 줄어들 수 있다. 창조경제와 창조적 경제는 코코넛과 야자수 열매처럼 동일체인 셈이다.

일부는 앞의 명사가 목적어가 되기도 한다. 손해배상은 ‘손해를 배상함’이란 뜻이다. 같은 방식을 창조경제에 적용하면 ‘창조를 경제함’이 된다.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억지스럽더라도 다듬어 본다면 ‘창조적인 성과를 내는 경제’로 변형할 수는 있다.

물론 최근 방한한 존 호킨스 박사처럼 ‘Creative Economy'(한글판이 나오지 않아 창조경제는 물론 창의경제 등 여러 가지 말로 해석되기도 함)란 이름으로 출간한 경우 고유명사의 성격이 강한 만큼 저자가 규정한 책 제목에 대한 정의는 존중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창조경제가 용어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창조경제는 자신의 고유명사나 다름없으니 나의 정의를 따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반면 줄임말이라고 정확히 밝히면 일은 쉬워진다. 여기에 ‘창조적 경제’라는 형용사 타입인지, ‘창조적인 성과를 내는 경제’라는 목적어 타입인지까지 밝히면 작금의 소모적인 개념풀이 소동은 일거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색한 관 주도 방식을 바꾸는 것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고위 관료들이 박 대통령의 깨알 같은 지시 사항을 받아 적느라 허덕이는 그런 모습은 창조의 느낌과 한참 거리가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3월에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창조성이 가장 부족한 집단으로 정치인이 압도적으로 꼽혔다. 그 다음으로 관료, 교수 순이었다. 국민의 눈에는 정치인, 관료, 교수 등 비창조적인 직업군의 인물들이 웬만한 국민이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양 호들갑스럽게 갈파하는 웃기는 상황으로 비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경제의 개념에 천착할 필요는 없다. 연구자들이 할 일이다.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를 튼실하게 가꾸는 실천적 대책에 골몰해야 한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개념 정립보다 목적을 어떻게 실현할지 고심할 때다.

한국경제는 7년째 2만 달러 전후에서 맴돌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개념의 추진동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창조경제의 방향성은 더욱 타당성을 가진다. 잠재력이 충분한 창조경제가 부질없는 용어의 함정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나라 발전의 신동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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