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의 핵심 분야으로 꼽히는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 납세자 입증책임제 등이 담긴 ‘역외탈세방지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와 공동으로 ‘역외탈세방지특례법’(가칭) 제정을 위한 입법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에 나선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조수진 실행위원은 “현재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 외국환거래법, 조세범처벌법 등 관련법은 역외탈세에 관해 부분적인 내용만 담고 있는데다 국제공조의무 등을 담기 부적합해 별도의 역외탈세 대응 법안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역외탈세 규모가 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과 마찬가지로 특례법을 둬야 한다는 논리다.
조 위원은 특례법에 △조세피난처 이용 납세자에 대한 입증책임 부과 △일정 요건의 조세피난처 소재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에 법인격 부인 법리 가능 명문화 △내부고발자에 대한 면책 및 신고포상금 상향 △부동산 등 해외자산 일제신고의무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그는 탈세여부의 입증책임을 과세당국에서 당사자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조세피난처 소재 기업과의 거래내역, 조세피난처 송금내역 등을 국세청이 인지하면 일종의 과세예비처분을 하고, 이에 대해 납세자가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정식 과세처분하는 방식을 취하자는 것이다. 조 위원은 “프랑스와 벨기에 등 일부 국가에선 조세피난처에 한해 일정 거래에 대한 입증책임을 납세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조세피난처 소재 페이퍼컴퍼니 가운데 배후에 경제적 실체인 개인이나 다른 법인이 있고 그 페이퍼컴퍼니와 배후자가 거의 동일하게 판단될 경우 법인격 부인 법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봤다. 조세협약이 맺어지지 않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법인격 제도(회사와 그 배후자를 별개 인격으로 봄)를 남용, 납세의무를 피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역외탈세 사실을 제보한 내부고발자에 대해선 형사처벌 등 책임을 면하도록 하고, 신고포상금도 일반적인 탈세신고포상금의 2배 이상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부동산, 주식 등 해외보유 자산 전반에 대한 일제신고제 도입과 △역외탈세에 대한 처벌기준 완화 및 처벌수위 강화 △과세당국의 전속고발권 폐지 △역외탈세자 명단공개 등을 특례법에 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엔 비판도 제기됐다.
강남대 안창남 세무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것이 납세자의 절세권 행사일 수도 있다”면서 “탈세는 물론, 역외탈세의 ‘역외’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또 “역외에서 탈세를 했으니 납세자가 그 정당함을 입증하라는 건 과세편의적 행정”이라면서 “역외탈세방지법이 제정되면 국내거주자는 국내 비거주자로 세법상 신분을 바꾸고 내국법인은 아예 조세피난처에 외국법인을 세워서 사업을 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조세정의네트워크 이유영 동아시아챕터 대표도 “현재 OECD 국가 중 조세피난처를 리스트화해서 법령에 규정하는 경우는 없다”며 “조세피난처를 리스트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대표는 “리스트를 적시한다 해도 여기 포함되지 않은 신흥 조세도피처로 적극적 이전이 이뤄져서 오히려 공격적 역외 절세 및 탈세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조세피난처로 규정된 국가나 체제와 갈등이 발생해 실효성 있는 양자 또는 다자간 공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박 의원은 이번 토론회 내용과 함께 전문가 의견을 추가 수렴, 조만간 역외탈세방지특례법 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안 교수와 이 대표를 비롯해 투기자본감시센터 이대순 공동대표, 뉴스타파 이근행 PD 등이 토론자로 나섰으며 주무부처인 국세청과 관세청에선 주최 측 참석요구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