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세계로]도청 스캔들 ‘미국의 甲질’

입력 2013-07-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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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프리즘’이라고 불리는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자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정보를 무더기로 입수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지 3주 가량이 지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미국의 도청 파문은 오히려 동맹국에 대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이중성을 한층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각국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 미국의 도청 파문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도 사임까지 부른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40여년 전 이맘 때 닉슨 대통령 측이 그의 재선을 위해 라이벌의 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미국 역사상 최대 정치 스캔들말이다.

사건 초기에 대수롭지 않은 절도 사건으로 위장됐던 워터게이트 사건은 나중에 선거 방해와 도청은 물론 관련자들이 과거에 저지른 불법행위까지 노출시키면서 엄청난 정치 스캔들로 비화, 이 음모를 은폐하려 했던 닉슨 대통령까지 몰락시켰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백악관을 찾는 정상들은 ‘벽에도 귀가 있다’는 의심을 하면서도 정상회담을 진행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만큼 후유증은 심각했다.

이같은 우스갯소리가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새삼 사실로 판명된 것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겠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이 4박6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도청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주목할 것은 미국의 도청 사실을 알면서도 각국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나라는 미국의 도청 사실이 폭로된 후 이를 확인하거나 비난, 해명을 요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당장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추진해야 하는 유럽연합(EU)으로선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FTA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지만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의 도청 스캔들과 상관없이 양측간 FTA는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익을 생각하자니 언제까지나 미국의 이중성에 분노하며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19세기 중엽 영국 총리를 두 차례 지낸 팔머스톤 경이 남긴 “국가에 영원한 아군은 없다. 있다면 영원한 국익뿐이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테러 대책’을 이유로 도청과 감청을 통해 방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해온 미국의 변명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넘어서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의 정치 스캔들임에 틀림없다.

미국이 프리즘 프로젝트를 통해 거둬들였을 국익과 저질렀을 부정을 떠올리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닉슨과 마찬가지로 중도 퇴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국의 첩보활동이 어제오늘의 일이었겠는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우리 정부를 비난할 것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대로 감시는 모든 나라가 다하는 일. ‘빅브라더’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를 한탄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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