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출범 이전 겨울리그 77연승. 슈퍼리그 8연패(1995~2004년). 프로배구 통산 7회 우승. 이는 1995년 11월 7일 창단한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아마추어 시절과 프로배구를 통해 기록한 기념비적 사례들만 모은 것이다.
삼성화재 블루팡스(전신 삼성화재 포함)가 걸어온 길은 한국 프로배구가 걸어온 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9시즌을 치르면서 7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정규시즌 우승도 7번 차지했다. 단기전인 플레이오프에서의 반짝 활약이 아닌 시즌 내내 리그를 지배하면서 우승까지 차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삼성화재를 거친 선수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김세진, 신진식, 김상우, 신영철, 석진욱, 장병철 등 전 국가대표 선수들이 몸담았고 지금은 다른 팀에서 뛰고 있지만 여오현, 최태웅(이상 현대캐피탈) 등도 삼성화재를 거친 선수들이다. 가빈 슈미트, 안젤코 추크, 레안드로, 레오 등 삼성화재를 거친 외국인 선수들도 모두 팀의 간판 역할을 해냈다.
삼성화재의 모그룹 삼성은 프로배구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 팀을 산하에 두고 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는 물론 남녀 프로농구까지 총 6개의 프로팀을 운영 중이고 탁구, 레슬링, 럭비, 테니스, 배드민턴, 태권도, 육상, 승마는 물론 게임단까지 운영한다. 배구단은 1995년 창단해 리그 내 타 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편이지만 남녀 농구단은 이미 각각 1978년과 1977년 창단했고 야구단 역시 1982년 창단해 원년부터 프로야구에 참여하고 있다.
최다 스포츠 구단을 운영 중인 것은 물론 오랫동안 스포츠단을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는 산하 스포츠 팀으로 직결된다. 종목을 막론하고 삼성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성화재 역시 창단 직후 곧바로 배구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기존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써)로 양분돼 있던 남자배구계에서 삼성화재는 1997년 한국배구 슈퍼리그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후 2004년까지 슈퍼리그 8연패를 달성했다. 겨울리그 77연승(2001년 1월~2004년 3월) 역시 이 과정에서 만들어낸 대기록이다.
기업이 운영하는 국내 프로종목은 수익 창출보다 사회 공헌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볼 때는 브랜드 홍보에 유용한 역할을 한다. 실질적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고 운영비로 연간 50억원 이상이 들어가지만 소속팀 선수들 앞에 ‘삼성화재’라는 기업명을 노출함으로써 충분한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경기장 내 광고 등을 통해서도 적극적인 브랜드 노출이 가능해 기업 입장에서는 브랜드 홍보와 스포츠를 통한 공익적 기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우승컵을 자주 들어올린 삼성화재라면 그 홍보효과는 타 팀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삼성화재가 보험업계에서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삼성화재의 선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삼성화재는 프런트와 선수단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룬 구단이다. 프런트와 선수단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어느 한쪽의 불만이 쌓이면 구단의 성적이 좋을 리 없다. 삼성화재는 오랜 구단 운영 경험을 통해 이 같은 부분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서 현장의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 현장에 힘을 실어준다. 선수단이 원하는 것은 수용 가능한 선에서 무한 지원해 돈독한 신뢰를 쌓고 있다.
성적과 직결되는 외국인 선수 선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프런트는 원하는 선수를 찾기 위해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선수와의 계약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위임한다. 감독이 결정을 내려도 구단주로부터 재가를 받아야만 허가가 떨어지는 타 구단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시즌 가빈이 나가고 레오가 들어올 당시에도 선수 선발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찾을 수 있도록 5~6명의 선수를 테스트하는 과정에서도 구단은 묵묵히 지원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하루가 지난 이후라도 원하는 선수를 보기 위해 외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프런트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1등 주의’를 표방하는 삼성화재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인성’이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기, 숙소·식당으로 이동할 때 슬리퍼 신지 않기, 연습경기라도 유니폼 제대로 갖춰 입기 등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부분부터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인성을 선수들에게 강조한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과거 광고 카피처럼 삼성화재가 정상의 자리를 계속 고수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작은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스포츠 산업 메카를 찾아서 ③삼성화재 블루팡스] 방인엽 사무국장 “프런트선수단 무한 신뢰… 삼성맨의 역할 철저 중시”
“외부에서 생각하는 삼성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진 않다.” 방인엽 사무국장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의 분위기는 타이트할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수단을 지원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일 뿐 선수단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고 강조했다.
삼성화재는 프런트와 선수단의 관계가 좋은 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방 국장은 “프런트와 선수단은 서로 견제하는 관계가 아니다. 호흡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우리 프런트는 만반의 지원을 한다”고 전했다. “김창수 구단주와 전용배 단장 역시 한목소리로 ‘프런트와 선수단 간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고 밝힌 방 국장이다.
신치용 감독이 20년 가까이 감독으로 자리하고 있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안겨준 감독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만큼 신 감독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물론 결정권과 독립성도 충분히 보장해 주고 있다.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는 문제 역시 프런트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감독님이 결정하면 우리는 믿고 따른다”고 밝히며 다른 구단 프런트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선수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선수 개개인을 신뢰하며 이른바 ‘삼성만의 문화’를 유지한다. 선수들 역시 구단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본부터 충실히 지키며 삼성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선수들과 일선에서 함께 호흡하는 김태희 선수단 지원과장은 “구단에서 시키지 않아도 선수들 스스로 지킬 것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밝혔다. 타 구단에 비해 훈련량이 많아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만들어진 ‘삼성의 우승문화’가 선수들 스스로를 움직이게 한다는 설명이다.
삼성화재를 거친 선수들은 은퇴 뒤 타 팀의 지도자로 자리 잡아도 삼성의 문화를 이식하기 위해 노력한다. 방 국장은 “삼성에서 우승을 해 봤던 선수들이고 자발적으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몸에 밴 선수들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화재의 화려했던 시절을 함께했던 선수들은 지금 팀을 떠났지만 그들의 우승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선수는 떠나가도 삼성만의 문화는 계속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