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과장은 기자들의 온갖 질문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시키려는 스타일이었던 반면 조 사무관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견해에는 논쟁도 불사했다.
조 사무관은 일 처리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총애를 받은 두 명의 관료 중 한 명일 정도로 일처리가 똑 부러졌다. 반면 현 과장은 기획라인 직속 상관이던 강봉균 차관보로부터 그렇게 예쁨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조 수석은 관료 생활 내내 승승가도를 달려 청와대 경제수석에 올랐고, 현 부총리는 국장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무역연구원장과 한국개발원장 등을 거쳐 예상을 깨고 경제부총리로 발탁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오석 경제부총리, 조원동 경제수석으로 경제정책라인을 짰을 때 대부분의 언론이 두 사람 모두 기획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책 호흡이 잘 맞을 것으로 평가했지만, 기자의 생각은 좀 달랐다. 두 사람의 스타일이 이처럼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사단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주택취득세 인하 문제를 둘러싼 부처 간 이해 충돌에 대해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과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을 나무랐다. 경제팀장인 현 부총리에게는 “경제부총리께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서 주무 부처들과 협의해 개선 대책을 수립하고 보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 부총리에게 중재할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으나 강한 질책이다.
대통령의 경제팀장에 대한 불만이 비단 이 문제에 국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에도 누차 현 부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문제 제기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 흘러나왔던 터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공개하지 말았어야 했다. 공보수석이든 경제수석이든, 아니면 비서실장까지 청와대 비서실이 홍보를 잘못했다. 정책 혼선이 대통령의 책임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경제팀장은 뭐가 되나?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드는 것과 진배없다.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정부가 지난 2005년 1월부터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양도세를 중과하겠다고 했으나 청와대 비서실이 틀었다.
이헌재 부총리는 제도 시행을 불과 보름여 앞둔 2004년 12월 중순 ‘양도세 중과’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당장 청와대가 발끈했다. 특히 이 정책과 직접 관련없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나서 중재하는 모양새가 됐다.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과 은행 구조조정을 처리했던 천하의 이 부총리도 대통령의 신임 없이는 설 곳을 잃었던 것이다.
반면 물러터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불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금융실명제를 김영삼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업고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박재윤 경제수석이 ‘신경제100일 계획’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한다고 나섰지만 김 대통령은 금융실명제에 관한 한 이 전 부총리에 전권을 줬다.
이 부총리는 기자들의 금융실명제 도입에 대한 추궁에 가까운 질문에도 모르쇠로 일관했고, 초유의 기자실 출입금지라는 치욕스러운 조치도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업고 금융실명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박 대통령은 현 부총리를 질책하기보다 경제팀장으로서 조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세상이 다 아는 현 부총리의 스타일을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것은 인사를 잘못한 대통령의 실책이고, 경제팀장의 리더십이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이 없는 것이다.
맡겼으면 믿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매주 현 부총리와의 독대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게 옳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힘은 예산편성권과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나온다.
지금의 청와대 수석 비서관 상당수는 물론 유정복 장관이나 서승환 장관 같은 이는 나름 정권창출에 지분이 있다고 믿는 실세들이 아닌가. 앞뒤 안 맞는 대통령의 수많은 공약도 지켜야 하고, 깨알같은 주문도 하면서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을 언급하는 것은 지나치다.
청와대 비서실이 더 문제다. 만 9년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한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귀는 있되 입은 없어야 한다”는 말처럼 비서는 자기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특히 조원동 수석은 언론이 붙인 ‘또와 수석’이라는 별명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 비서(秘書)의 한자 의미를 잘 새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