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축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D 투자가 줄면 미래의 성장동력 확보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자칫 한국경제가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대부분의 대기업이 R&D 투자 비율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R&D 투자 비율(당기 R&D 비용/당기 매출액)은 지난 2008년 9.5%를 기록했으나 2010년과 2011년 각각 6.1%, 6.2%로 답보상태에 놓인 뒤 2012년에는 5%대인 5.9%로 떨어졌다. 현대자동차의 R&D 투자 비율 역시 2008년 3.7%에서 2009년 2.5%로, 다시 2010년 2.1%로 하락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1%대로 떨어진 1.9%를 기록했다.
국내 철강과 중공업 부문의 대표주자인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포스코의 R&D 투자 비율은 2008년 1.4%에서 2009년 1.7%로 반등했으나 지난해에는 1.0%를 기록해 하락 반전했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0.8%에서 2012년 0.5%로 0.3%포인트 줄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일상화되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안정적인 운영을 경영의 최우선에 두면서 R&D 투자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2011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2010년 이후 부진을 보인 LG전자는 R&D 투자 비율을 늘려 나가고 있다. 이 회사의 2009년 R&D 투자 비율은 4.5% 였으나 2010년 5.0%, 2011년 5.1%, 2012년 5.7%로 점차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실적 부진 등 기업이 위기에 닥치자 R&D 투자를 크게 늘린 결과로 풀이된다.
그나마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상장기업의 R&D 투자 비용은 2010년 18조8000억원, 2011년 19조4000억원, 2012년 20조3000억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하면 2010년 9조1000억원, 2011년 9조2000억원, 2012년 9조1000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전체 상장기업 R&D 비용의 55% 이상을 차지하면서 마치 전체 상장기업의 R&D 투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안중기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본부 연구원은 “상장기업의 매출이 최근 크게 감소해 성장성이 하락했고 수익성도 나빠지고 있다”며 “이 같은 환경에서 삼성전자, 현대차 등을 제외하면 R&D 투자를 늘릴 곳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 연구원은 “정부 차원에서 (R&D 투자를 살리기 위해) 규제 완화나 정책적인 지원책 등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오 이코노미스트는 “기업이 R&D 투자를 늘리고 내수가 성장하려면 정부가 일정 부분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며 “그러나 정부가 부동산 취득세 인하 하나만 가지고도 설왕설래하는 것을 보면 의지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