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성]낮은 구속 높은 집행유예 온정적 처벌… 피해자는 떨고 있다

입력 2013-08-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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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왜 만연한가

지난해 5월 알려진 고려대 의대생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가 ‘명문대’ 학생이고 환자의 신체건강을 다루는 의료인이 될 ‘의대생’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당시 성추행 의대생들이 현행법상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더라도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결국 가해자가 ‘출교’되기에 이르렀다.

대학 사회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는 성폭력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성범죄 발생률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거나 권력관계에 있어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워 신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성범죄는 언제 어디서든 사회지도층, 직장 상사, 선후배, 친구, 심지어 초·중·고교 교사와 가족·친지에 의해서도 벌어질 수 있다.

법무부는 올해 3월 ‘4대악(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 근절 추진단’을 설치했고 성폭력 전담검사 TF를 구성, 올해 안에 5대 검찰청에 ‘여성아동범죄조사부’설치로 성폭력 범죄 수사의 전문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나 국회, 검·경, 학교, 직장 등 어디서도 근본적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알려진 사건은 드러나지 않은 사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변화들이 모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폭력’ 범죄 왜 만연해 있나=의대생 성추행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고려대에서는 교수의 여학생 성추행 사건에 이어 한 남학생이 19명을 성추행한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고려대 한 남학생이 지난 2011년부터 교내 동아리방 등에서 술에 취한 여학생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하는 등 성추행 혐의가 있다는 고발장을 고려대로부터 접수해 수사 중이다.

왜 20명에 가까운 피해자들은 성추행을 당하고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까. 여전히 성추행 혹은 성폭행은 대학 사회에서도 쉽게 공론화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율은 연 10%대에 머물고 처벌받는 가해자는 전체 성폭력 범죄자의 2%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성폭력 가해자의 80% 이상이 아는 사람이다 보니 피해자들은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혼자 끙끙 앓게 된다. 성폭력을 당한 이후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로부터 겪는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거론하며 비난하거나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이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 당시도 가해자 중 한 명이 ‘피해자의 평소 사생활이 문란했다, 아니다’ 등 명예를 훼손하는 설문조사를 실시, 2차 피해를 입혀 논란이 됐다.

피해자들은 용기를 내 고소를 하더라도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과거 성력 등 사생활이 노출되거나 원치 않는 합의 강요로 인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또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한 이유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기보다 거칠게 다뤄도 된다고 여기는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온정적 처벌, 낮은 구속 비율, 높은 집행유예 선고 등이 성폭력 발생을 높인다며 사법부에 엄정한 판결을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친고죄’ 폐지, 남은 과제는?=대부분의 성폭력이 친고죄 규정에 의해 피해자 의사에 따라 형사소추권이 철회될 수 있는 범죄로 분류돼 피의자(피고인)들이 합의를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피해자를 괴롭히고 심지어 협박하는 일도 빈번했다.

하지만 최근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10%대에 머물고 있는 성범죄 신고율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친고죄 폐지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피해자 정보에 대해 철저히 보호하고 비공개 재판이 의무화되는 등 관련 제도를 더욱 손질할 필요가 있다.

성범죄 신고가 늘어난 만큼 부족한 전담 인력을 늘리지 않으면 피해자 보호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근속기간이 길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아동이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의 경우 고도의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한데 현행 구조에서 이런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수사와 공판검사가 다르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판 검사가 바뀌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제3자의 고발이나 인지 수사를 할 수 있게 된 만큼 피해자 신상보호에도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 ‘성폭력피해자 방패법’(Rape Shield Act)이 제정돼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피해자의 과거 행적이나 평판 등에 대해 법정에서 질문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피해자의 이미지를 손상시켜 피해자 진술의 증거 가치를 떨어뜨리는 변호 방법이 허용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형사사법 절차상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개인정보 집적 폐지, 반성폭력 감수성 향상을 위한 공교육의 통합적 인권교육 의무화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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