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가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올 여름 예년보다 긴 장마와 극심한 폭염에 농산물 등 식탁 물가가 크게 올라 하반기 경제회복을 가늠할 수 있는 민간소비에 ‘적신호’가 켜졌다. 유례없는 폭염에 전기 다소비 산업체에 대한 강제절전의 영향으로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있다. 날씨리스크에 가뜩이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내수경기가 더욱 침체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 정부가 제시한 하반기 3%대 중반의 경제성장률 달성에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50일 가까이 계속된 긴 장마 뒤 폭염이 이어지면서 채소와 생선 등 농수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호박 소매가격은 개당 1657원으로 1년전(855원)에 견줘 94%나 급등했다. 방울토마토(1kg) 가격은 6859원으로 1년전 4100원보다 67% 크게 올랐다. 얼갈이 배추와 청상추 가격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 32%, 시금치, 깻잎, 풋고추도 각각 27%, 24%, 24% 올랐다. 한국은행이 16일 내놓은 ‘생산자물가지수’에서도 7월 내내 장마가 이어진 탓에 농림수산품 가격은 지난달 보다 0.7% 올랐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폭염이나 장마가 길어진데다 추석까지 앞두고 있어 농산물에 대한 물가상승 압력이 예년보다 더 큰 수준”이라며 “태풍의 가능성도 남아 있어 채소류의 경우 9월에도 수급불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한달넘게 계속된 폭염으로 남해안 적조 피해가 심해져 생선값가지 들썩이고 있다. 하반기 수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피시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처럼 장바구니 물가가 크게 오르면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9개월째 1%대 저물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체감물가가 높을 경우 소비부진으로 이어져 내수침체를 부추길 수 있다.
예기치 않은 기후변화로 경제성장의 동력원인 산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에 전력수요가 크게 늘자 정부는 절전 목표치를 준수하기 위해 제조업체들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고 있어서다. 전기 절감 5% 이상 줄여야 하는 기업의 경우 생산라인을 일부라도 세워야 할만큼 기업들의 고충은 커지고 있지만 생산 차질에 대해선 별도의 대책도 세우지 못한 상태다. 경기도 안 좋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전기 공급까지 걱정해야 하다 보니 본연의 기업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에도 폭염의 영향으로 공장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 지 알려주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7.2%로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산업계의 정상적인 조업을 해치는 제조업 가동률 저하는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켜 경제성장률 하락의 위험요인이 된다. 또 냉방기 사용 자제는 근로자의 업무효율을 떨어뜨리고 이를 막기 위한 기업들의 각종 비용 부담도 우리 경제에 대한 또다른 날씨리스크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은 “우리나라가 만성적인 블랙아웃 우려가 지속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기업이 전력을 원하는대로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전력 공급은 제조업 가동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