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한 크리스천의 간절한 기도일까. 아니면 교회 목사의 신도들을 위한 설교일까. 다 틀렸다. 스포츠 경기에서 흥분한 해설위원의 말이다.
지난 2010년 2월 23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만m 결승에서 이승훈(25)이 행운의 금메달을 따내는 순간 당시 SBS해설위원 제갈성렬(43)은 이 같은 발언을 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였던 그는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서 제2황금기를 노렸지만 준비 되지 않은 해설로 실수를 연발, 곧바로 하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은퇴 후 방송국으로 향하는 스포츠 스타가 많다. 수년 전만에도 해설위원이 아니면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국 출입은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스포츠 관련 예능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면서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국 출입 기회가 크게 늘었다.
그만큼 문제점 노출도 심각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금메달리스트 심권호(41)는 막말 해설로 물의를 빚었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레슬링 해설(SBS) 도중 “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방심하면 안 돼!” “에이 씨” 등 막말을 연발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경기 흐름과 기술 분석도 없었다. 그저 흥분하며 고함을 지르는 일이 전부였다. 결국 심권호는 언론과 시청자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해설위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는 지난해 6월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경기에 몰입하다 보니 욕설, 반말, 괴성이 나왔다. 두 세 단어로 10분을 버텼다”고 말해 해당 방송국의 해설위원 선정 방법에도 허점을 노출했다.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 도전은 해설을 넘어 개그맨, 가수, 배우 등 폭넓은 분야로 이어지고 있지만 입지를 굳힌 선수는 많지 않다.
민속씨름 백두장사 3회, 천하장사 준우승 5회를 차지한 박광덕(41)은 지난 1995년 ‘제2의 강호동’을 꿈꾸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한때 씨름선수 출신 개그맨으로 관심을 끌었지만, ‘강호동의 아류’라는 냉소적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최홍만(33)은 2005년 씨름선수에서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그러나 그는 시즌 중에도 틈틈이 방송국 문을 두드렸다. 강호동을 롤모델로 한 예능프로그램부터 음악, 드라마(일본), CF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방송계 자리굳히기에는 실패했다.
천하장사 출신 백승일(37)은 가수로 전향했다. 1993년 7월 최연소(17세3개월) 천하장사에 오른 백승일은 소속 팀(청구씨름단) 해체로 가수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그는 가수와 K1(이종격투기·입식타격)을 놓고 장시간 고민했지만 어릴 꿈이었던 가수의 길을 택했다. 2006년 첫 앨범 ‘나니까’를 발표 이후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자기관리 미숙으로 추락한 사람도 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강병규(41)는 재치있는 입담과 예능감으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KBS ‘비타민’, ‘해피선데이’ 등에 출연해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도박, 사기혐의 등으로 피소되는 등 자기관리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공갈 및 명예훼손, 폭행, 사기 혐의로 법정 구속이 확정된 상태다.
그밖에 자질 및 존재감 부족으로 ‘팬심’잡기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핸드볼 선수 출신 최현호(37)는 지난 2009년 김지운 감독의 단편영화 ‘선물’에 출연하며 영화계로 데뷔했다. 이후 이현철 감독의 ‘키스(2011)’에 출연했지만, 팬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김동성(33)도 지난 2011년 10월 방송된 SBS 토크프로그램 ‘자기야’에 출연해 “은퇴 후 연예활동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밝혔지만, 활동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처럼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국 러시는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지만 성공 스토리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경필 JTBC 프로야구 해설위원은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아무런 준비 없이 방송계에 뛰어든 선수들의 무지함이 가장 큰 문제”라며 “과거 자신의 모습은 내려놓고 새로운 환경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