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과 음주 문화의 변화로 주류 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맥주 회사들의 3차 전쟁이 시작됐다. 물에서 시작해 알코올 도수를 낮추더니 이제는 ‘술맛’으로 주당들을 사로잡겠다면서 신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여년 간 항상 맥주 전쟁의 포문을 열며 시장의 중심에 있었던 하이트진로는 최근 ‘에일맥주’를 내놓고 본격적인 맛 경쟁에 나섰다. 이달 초 수입맥주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에일맥주 ‘퀸즈에일(Queen's Ale)’을 출시했다. 북한의 대동강맥주 보다 맛이 없다’는 국산맥주 폄하가 계속되자 ‘맛’과 ‘다양성’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에일맥주는 발효 중 표면에 떠오르는 상면효모를 사용해 고온(18~25도)에서 발효시킨 맥주로 세계 맥주 시장에서 3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대형맥주사 최초로 에일맥주 생산에 나서자 오비맥주도 반격을 준비 중이다. 이미 국내에서 주문자상표 부착방식으로 에일맥주 생산 경험을 갖고 있어 자체 브랜드 출시에 문제가 없다. 오비맥주는 연내 출시를 목표로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에일맥주는 겨울에 소비가 많다”며 “겨울을 타깃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맥주 회사들의 ‘맛전쟁’은 20년 전 ‘물 전쟁’을 방불케 할 것으로 보인다. 1993년 조선맥주가 천연 암반수 콘셉트의 ‘하이트’를 출시하며 이른바 물전쟁을 일으켰다. 물맛이 맥주맛을 좌우한다며 회사명이 아닌 ‘하이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부동의 1위였던 오비맥주는 3년 뒤 결국 2등으로 처지며 15년 간 한번도 시장 1위를 되찾지 못했다.
이후 94년 진로쿠어스가 맥주사업에 뛰어들며 시장경쟁에 더 심해지자 업체들은는 물전쟁과 품질전쟁으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였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업체 사장들은 경쟁이 전쟁 수준으로 치닫자 서로 만나지도 않았으며 자리가 마련돼도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1년 10월, 하이트의 15년 철옹성이 오비에게 함락되자 하이트진로는 또다른 전쟁을 준비했다. 올초 하이트진로는 이른바 도수전쟁을 시작했다. 주력맥주인 ‘d’의 알콜도수를 종전 5도에서 4.8도로 낮춘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선택은 주효했다.
올 상반기 ‘d’ 판매율은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해 85.7%가 성장했으며, 특히 맥주 브랜드 인지도의 바로미터인 유흥중병 판매 성장율은 128%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물→도수→맛’으로 이어지는 맥주 전쟁의 승자가 누가될지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며 “소비자들의 입맛이 까다로와진 만큼 이번 에일맥주 맞대결은 향후 시장 점유율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