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학 PD의 자살 사건은 우리나라 드라마 산업과 제작 현실에 큰 시사점을 안겨줬다. 척박한 제작환경에서 비롯된 출연료 미지급 사태, 쪽대본, 과도한 외주제작 편성비율, 방송사와 제작사의 불공정한 수익배분 문제 등 1991년 외주제작제가 시행된 이후 20여년간 곪아 있던 난제들이 또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당사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5일 유승희 민주당 의원 주최로 ‘외주제작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 내용은 외주제작 방식에 대한 정확한 개념 확립, 저작권과 수익 배분 기준 마련, 협찬 고지와 간접광고의 법 개선, 표준계약서에 따른 계약 관행 개선 노력, 외주제작사 등록제와 외주 인정 기준 마련 등 우리 드라마에 대한 문제점이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 특히 토론자들은 외주제작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면 외주제작 인정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마련한 방송 프로그램 편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작가 계약 체결 △출연자 계약 체결 △주요 스태프 계약 체결 △협찬유지 또는 제작비의 30% 이상 조달 △제작비 집행 및 관리 등 5가지 중 3가지 이상을 갖추면 외주제작 프로그램으로 인정된다.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총괄팀장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외주제작 편성 고시는 모든 제작사에 해당하기에 무의미하다”며 “효용가치가 없으니 고시 개정 목적에 맞는 합리적 권리와 수익 분배 등 현실적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상식적 수준에서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제작비를 50%씩 부담하면 권리도 50%씩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판권 판매로 인한 수익배분도 마찬가지다.
박 팀장은 드라마 제작사 등록제 도입과 페널티(penalty) 제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2012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된 896개의 독립제작사 중 156개가 드라마 제작사다. 이 중 지난해 방송편성을 받은 드라마 제작사는 34개밖에 되지 않는다. 박 팀장은 “드라마 산업이 한류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리가 필요하다”며 “페널티제도 도입으로 생계형 배우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생기면 제작사와 제작자에게 모두 페널티를 주자는 것이다. 불량 제작사를 걸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갑 한국연기자노동조합 정책위원회 의장은 “외주제작사는 부실하지만 방송사들은 이를 편성에 넣고 연기자들은 피해를 받는 악순환이다. 방송 편성에 관련된 고시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책적으로 충분한 제작 능력을 갖춘 외주제작사들을 우선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방송사 측은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KBS 드라마국 유건식 팀장은 “방송사가 갑, 제작사는 을로 바라보는 시대는 바뀐 것 같다. 작가나 배우를 보유하고 있어야 갑”이라며 “2011년 종편이 들어서면서 과수요가 발생했고, 작가료, 연출료, 출연료, 스태프료가 60%까지 과다하게 올라갔다. 시장이 재편되면서 상황들이 변해 간다”고 주장했다. 제작비와 권리 배분에 대해 유 팀장은 “방송사의 리스크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60% 정도의 제작비를 방송사가 제공하고 있지만 카메라, 연출자, 스튜디오, 편집실 등 상당한 간접비가 소요되는 부분은 포함되지 않고 있다”며 “제작비와 권리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경우 제작비를 적게 주고 외주사가 권리 대부분을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 팀장은 “전체적인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며 “표준계약서도 좋았지만 다른 구조적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