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스픽스 갈등구조를 깨자] 전문가 진단 “정치·사회적 반목 해소 못하면 경제성장 불가능”

입력 2013-09-3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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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 조장하는 정치 개혁하고 사회적 신뢰·통합의 길 찾아야

대한민국은 갈등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극화 현상으로 계층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세대·이념·노사 등 갈등 유형도 다원화·복잡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갈등 발생의 핵심 원인으로 남북분단에 따른 이념 대립, 빈부격차, 영호남의 지역갈등 등을 꼽았다. 특히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으며 중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갈등관리 컨트롤 타워를 세워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고 생활밀착형 정치시스템 구축 등 정치제도 개혁을 전문가들은 주문했다. 보편적 복지는 물론 경제민주화를 통해 일자리 창출 등 소득 불평등 해소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계층·세대·지역 갈등 등 대립을 넘어서지 않고는 위기의 한국호가 앞으로 갈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 집단 간 불신, 욕심이 분열 불러…빈부격차 갈등 증폭 = 진보-보수 등 이념갈등은 사회갈등의 핵심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집단 간의 불신과 과도한 욕심이 사회 갈등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타인에 대한 신뢰지수는 1981~1984년 38.02%에서 최근 27.33%까지 떨어졌다. 이 가운데 정당과 대법원, 경찰, 행정기구에 대한 신뢰지수가 거의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사회에 불신이 만연하다 보니 서로 믿지 못하고 국가나 집단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개인주의적 성향만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양상이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은 “국민이라는 집단적 사고 대신 나와 내 가족이라는 개인주인적 성향이 발달하고 그에 맞는 공공서비스를 원하는데 이를 국가가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며 “물론 거기에는 한정된 재화와 분배의 불평등 구조, 의사결정 과정과 절차의 비공정성 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빈부격차는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근로자 임금만 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 격차가 60% 정도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역시 6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더 큰 원인은 소득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이라며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 임금의 36% 수준이다. 살기가 힘드니 마음에 여유가 없고 짜증이 늘고, 작은 일에도 화가 나는 등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육을 통해 계층이동이 가능한 통로가 줄어들어 사회갈등 해소가 요원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빈부격차이고 이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 빈부격차가 벌어지지만 열심히 노력해 빈부격차를 스스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경제양극화가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도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원칙 없는 해결이 갈등 생성의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연구위원은 “그동안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약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사회적 요구사항이 무조건적으로 수용돼 왔다. 이제는 요구사항이 과연 한국의 헌법적 원칙과 가치로 판단할 때 합당한지를 따져볼 때다. 무조건적 수용은 끊임없는 요구만을 만들어 내고 갈등을 조장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 정치권이 갈등조장…정치제도 개혁해야 = 갈등의 관리나 해결을 위해서는 중재와 조정이 필요하고 이 역할은 정치권이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이런 긍정적인 역할은커녕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등 오히려 국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정치제도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운열 교수는 “특정 지역이 특정 정당의 볼모로 돼 있는 현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소선거제도에서 중대선거제도로 바꾸거나 지역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이고 비례대표 수를 늘리는 방안, 대통령 결선투표제도 도입 등이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정치권의 갈등조장 행태도 막는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앙정치를 로컬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중앙에 집중된 정치를 지역으로 이전해 거대 이슈에 대한 정쟁을 줄이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는 정치권은 물론, 중앙정치에 집중돼 있다. 정국 어젠다에만 집중돼 있고, 로컬이나 공동체 커뮤니티 이슈 공론화 공간도 없고, 그걸 공론화시킬 주체도 없다”며 “개인들이 그런 부분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점을 찾는 훈련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작은 이슈일수록 합의가 쉽다”고 말했다.

보다 생활밀착형 정치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은재호 실장은 “이제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숙의민주주의제도를 접목시켜 국민들의 생활현장에 보다 밀착한 정치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정부 경제민주화 의지 갖고 이뤄내야 = 전문가들은 일자리만 늘어도 사회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정책은 국민 생활의 안정을 가져오고 이는 사회갈등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이뤄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초 목표대로 경제민주화를 잘 밀고 나가야 사회적 갈등을 막을 수 있다”며 “삶의 위기를 느낄 때, 즉 일자리가 불안하면 위험해진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정책은 생활의 안정을 가져온다. 그만큼 일자리 창출은 사회갈등을 없애는 중요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국민통합을 위한 탕평인사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인사가 만사라고 보고 국민 화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운열 교수는 “인사가 만사다. 국민을 화합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탕평인사다. 정부가 전국 곳곳에서 전문가를 찾아서 중용하면 갈등 요인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어떻게 보면 정부도 이해당사자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다. 윤상호 연구위원은 “공무원의 보신주의와 이기주의를 없앨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정부 영역의 축소를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 공공갈등 예방, 해결법 등 법제화 절실 = 전문가들은 사회갈등 수준이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 단순 규범적 차원으로는 해소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제도화나 법제적 기반 구축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공공 갈등의 예방과 해결에 관한 법률 제정이다. 이를 통해 대체적 분쟁해결방안(ADR)의 실천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경우 중앙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동시다발적 갈등 상황에서도 갈등 예방 및 실효적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재호 실장은 “사회자본,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규범적 차원이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실천의 얼개를 구성하는 법제적 기반구축이 먼저”라며 “법체계 구축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 다수에서 이미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갈등관리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가 갈등관리를 위한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고 정부 내 갈등조정 기구의 중립성, 공정성, 신뢰성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태순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신론이 있지만 우리는 정책만 내놔도 국민들 등쳐 먹는 거 아니냐는 의심부터 한다”며 “특히 갈등을 제도적으로 바꿔야 한다. 링 밖에서보다 링 안(룰이 정해진 틀)에서 해결해야 한다. 갈등을 풀 수 있는 갈등제도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등조정 전문가 인증제를 제도화하고 갈등관리제도 운영에 필요한 공공펀드 조성 등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긴요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예컨대 미국 연방정부는 ACUS(Administrative Conference of the United States)와 FMCS(Federal Mediation and Conciliation Service) 등의 기구를 통해 갈등관리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갈등관리가 하나의 행정문화로 정착하도록 유인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인터뷰에 응해 준 전문가들에 따르면 프랑스와 캐나다를 비롯해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주요 국책사업을 설계하고 시행하기 전에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일련의 절차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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