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패러독스'에 빠진 한·미·일 3각 외교전선

입력 2013-10-08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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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패러독스에 따른 불신과 대립의 구도를 점진적으로 신뢰와 협력의 구도로 바꿔나가자."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발행된 영문 학술지 '글로벌 아시아' 가을호에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외교 : 대한민국 외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기고문에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설명하면서 "다자적 협력의 전통이 부재한 동북아에서 신뢰외교를 확대 적용하자"는 화두를 던졌다.

동아시아의 이웃으로 존재하면서도 과거사와 영토 갈등 등 쉽게 치유되지 못하는 갈등요인으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과 중국, 일본을 염두에 둔 말이다.

현실적으로 이 과제는 일본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나도록 한일 양국은 정상적인 외교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양국 정상회담은 언제 성사될지 모르고 다자무대에서 어렵게 성사된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양국은 '편한 친구'같은 모습을 연출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의 두 사례가 이런 양국 관계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달 26일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양국은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병세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밝혔듯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번영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 일본 정부가 과거문제를 치유하려는 용기있는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인사말을 건넸으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윤 장관이 "과거사 피해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가 하루속히 이뤄져 이들의 고통과 상처가 치유돼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지만 기시다 외무상은 "이해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의 관계를 착실히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만 답했다.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21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더 냉랭해진 한일 관계를 체감케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만났으나 대화는커녕 눈길도 교환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외교에 주력해야 하는 미국 정부가 이런 한일 관계를 매우 곤혹스럽게 느끼고 있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지난달 30일 방한한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에게 박 대통령이 "자꾸 퇴행적인 발언을 하는 (일본) 지도부 때문에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 관계의 개선을 희망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더없이 난감할 수밖에 없는 장면으로 비쳤을 것이라고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7일(현지시간) 전했다.

미국은 어느덧 'G2(주요2개국) 반열'에까지 올라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함께 전선을 구축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3일 도쿄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의 '2+2(외교+국방 장관) 안전보장협의위원회'의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에서 열린 2+2회의에 함께 참석한 것은 처음이어서 진작부터 워싱턴 외교가는 그 결과를 주시해왔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17년 만의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약속을 포함해 일본의 군사적 역할확대를 사실상 지지했다.

한국과 일본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이지만 미국은 이런 '외곽의 변수'에도 불구하고 중국 견제 전선의 최우방으로 일본을 선택할 수 있음을 과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 조야에서는 미국을 축으로 하고 한국과 일본이 가세하는 3국 협력 관계 구축에서 '과거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한국'을 불편해하는 기색마저 느껴진다.

지난달 25일 미국 반더빌트대학의 미일관계 연구소장을 맡은 제임스 오워 교수는 워싱턴DC 헤리티지 재단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미국과 일본은 군사협력을 잘하고 있으나 한국이 일본과 협력하지 않으려고 해 매우 실망스럽다"고까지 말했다.

문제는 국익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 가운데 하나인 외교의 측면에서 볼 때 세계 최강국 미국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요소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시킬 외교력이 우리에게 있느냐이다.

일본이 과거사를 왜곡하고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등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한국의 명분론이 현실 외교 무대에서 얼마나 수용될 것인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윤 장관이 기고문에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실현을 위해 "기후변화와 환경, 재난구조, 원자력 안전 등 작지만 의미있는 연성이슈에서 시작해 협력의 관행을 축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어려운 문제의 진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지적은 시의성이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전했다.

바야흐로 한국의 외교가 스스로 설정해놓은 패러독스의 논리를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하는 형국에 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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