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푸르름을 찾아주는 수려한 자연과 더불어 은행나무에 아름다음을 감상하며 신록의 계절에는 그 상큼한 초록 잎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피로감을 씻어주고 찌는 듯한 무더위에 시원한 매미 소리와 함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는 동안 신선하고 편안한 마음에 여유를 느끼게 한다.
가을이 되면 온통 황금색으로 물든 나무그늘 사이로 언뜻 언뜻 비치는 푸른 하늘은 우리에게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환희를 느끼게 해주며, 그러다가 그 노란 은행잎이 한잎 두잎 길가에 떨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시인이 된 감정으로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면서 한해의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이 뚜렸한 과정을 거쳐 변하는 은행나무는 아울러 우리들의 생활에 여러 가지 혜택을 주기도 한다. 가로수, 정원수 등으로 고향의 동산에서 뛰어놀던 어린시절 부터 그 끝이 예쁘게 갈라진 부채모양의 잎은 다른 어떤 나뭇잎 보다 인상적이다. 은행나//무열매가 떨어지면 다투어 주워 모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날려 조용하게 바스럭 거리는 은행잎 스치는 소리, 금빛 낙엽을 발로 차며 뛰어 다니던 때, 책갈피 사이에 끼워둔 은행잎 등 누구나 은행나무에 대한 추억은 한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우리에게 밀접한 나무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정체와 근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겨진 이유는 사시사철 짙은 그늘을 제공해주는 좋은 점과 나무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강한 생명력과 스스로를 유지하는 힘이 강하고 병해충이 거의 접근 하지 못하고 추운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 나무는 사람들에 분주한 삶과 함께 유유히 성장 해왔다. 사람의 생명이 짧은 역사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은행나무는 그 장구한 생명력은 지녔다.
은행나무가 신기한 것은 고생대로부터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원은 은행나무의 불가사함을 일컬어 살아있는 화석 이라고 명명 하였다.
은행이 지구에 처음 나타난 것은 3억5천년전인 고생대부터이다. 이지구상에 처음으로 식물이 모습을 나타낸 것은 약 15억년전인데 당시에는 단순한 구성의 균류나 풀종류가 서식 하는 데 불과하였다. 그것이 진화하여 이끼류나 양치류가 되고 고생대 중엽에 이르러 현재의 식물이 땅에서 시작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다음에 출현한 것이 은행, 소철 등의 나자식물이다. 중생대는 공룡이나 암모니아트의 시대로 고생대부터 서식 하던 은행나무는 최고의 전성기였다. 1억5천만년전의 중생대 쥬라기 시대의 은행나무는 그 화석이 아메리카서부, 알레스카, 카나다, 그린랜드, 시베리아, 영국, 오스트리아, 중국, 일본, 등 거의 전 세계에서 발견 되고 있다. 그러나 약 6천만년 전부터 은행나무는 일본과 한반도, 중부 대륙을 제외하고는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멸종되어 버렸다.
당시의 환경 변화에 대해 자세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포유류가 활약하는 신생대로 접어들면서 대상림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은행나무만이 지구의 한쪽 구석에서 살아남아 있었다.
호모사피엔스 라 불리는 현재의 사람이 탄생한지 10만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직립보행의 사람도 약 4백만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은행의 생존은 그 보다도 훨신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지구는 여러 가지 형태로 모습이 변해 왔다. 빙하기를 거치는 동안 생물중에는 유전자 조차 남기지 않고 멸종한 것도 적지 않았다. 가혹한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고 살기위해서는 진화를 되풀이하며 외형을 적절하게 바꿔야 했으며 이렇게 보면 인류도 예외 없이 그 진화의 연장선상에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만 자란다. 본래의 원생종은 중국이고 불교의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짐작만 할 뿐으로 언제부터 우리의 친근한 나무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양의 한곳에서만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은 동아시아의 기후나 풍토가 은행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며 일본의 은행나무는 중국과 한반도에서 전수된 것이다.
은행나무에는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은행열매를 공손수, 라고도 하고 화석나무,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해서 압갑수 라고도 한다. 그 외에 백과수, 부지감, 백화매, 백행, 영안, 부지용, 소녀머리형나무, 물을 뿜어내는 나무, 안개를 품어내는 나무, 어머니나무 등이 있다.
공손수의 공손이라 하는 것은 왕후귀족의 자손이란 의미로 아버지가 심은 후 자손대에 가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어머니나무라 하는 것은 가지와 가지사이에 혹과 같은 것이 생겨 그것이 여성의 유방 모양과 흡사하게 달려 있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소녀머리형 나무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이것은 영어의 Maiden Hair Tree를 번역한 것이다. 은행잎의 잎맥이 웨이브형으로 되어있어 소녀의 머리 형태와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이렇게 은행나무에 얽힌 여러 가지 이름으로 그 역사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은행나무는 1과 1속으로 속명인 Gingko는 일본발음이 잘못 전달된 것에서 비롯되었고, 종소명 biloba는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라는 뜻이다. 살구를 닮은 열매에 흰 빛이 돈다고 해서 은행(銀杏)으로 불리며, 영문이름 또한 은빛 살구를 뜻하는 'Silver apricot'이다. 꽃말은 '장수, 정숙, 장엄함'이다.
이러한 은행나무는 천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위엄이 당당 할 만큼 오래 사는 나무 다. 우리나라 전국에는 500년 이상 된 거목은 800여 그루나 된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대체로 한그루만 서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놀라운 현상은 홀로서기를 좋아하는 은행나무에도 암, 수 구별이 있는 나무이다. 은행이 열리는 것은 암나무이고 열리지 않는 것은 수나무로 알려져 있지만 수나무의 정자와 암나무의 꽃가루가 수정이 되어 이루어 진다고 하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정충이란 정자와 같은 웅성생식세포이다. 식물에 이런 현상이 있는 것도 은행만의 신비이지만 은행의 웅주인 정자가 봄이 되면 대량으로 퍼진다. 그러한 정자는 20~30km 떨어진 곳까지 바람에 날아가 은행의 암술꽃에 앉는다. 여기에서 수정이 이루어져 종자가 생기는데 결코 서두르거나 동요됨이 없이 꽃가루집으로 깊이 들어가 약 5개월 동안 성장을 계속 한다. 그 후 꽃가루에서 꽃가루관이 만들어져 그 속에 직경 0.3mm 정도의 두께로 정자가 자란다. 정자는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꽃가루관으로 부터 헤염쳐 나와 난세포와 결합하여 수정을 완료 한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은행나무의 이러한 수정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정자에서 수정 하는 것은 이끼류나 양치류 등의 원시적인 식물뿐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살아온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은행나무의 강한 생명력은 그 두껍고 딱딱하게 굳은 나무줄기를 만져보면 알 수 있다. 은행의 나무껍질은 코르크질이 두껍게 발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에 쪼이드라도 나무의 중심부와 형성층의 세포분열 조직은 완전히 보호되어 피해를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찰에 큰 화재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는 타지 않고 보존 되어 있다. 일본의 원폭투하 때 향우 20년간은 식물이 일체 자라지 못할 것으로 생각 했었는데 히로시마의 나가사끼에서도 가장먼저 싹을 틔운 것이 은행나무이다. 엄청난 파괴력으로 도시를 완전히 불태웠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지구의 생명체계에 대한 무모한 도전 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고 폐허가 된 환경 속에서도 은행나무는 싹을 틔웠다. 이러한 강한 생명력이 강한 생명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용문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 되고 있다.
수령(樹齡)은 약 1100여년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67m, 뿌리부분의 둘레가 15.2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29.1m, 남북으로 25.9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용문사 경내에 서 있는데 배수가 잘 되고 있는 적지조건에서 자라고 있다.이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노거수의 대표적인 존재인데 그것은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수령과 수고에 있어서 가장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고 또 전설이 담겨져 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 때 태자(太子)였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서러움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손수 심었다고 말이 있는가 하면 역시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그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이 은행나무로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것은 삽목신화의 하나로서 세계 각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을 고려할 때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약 천년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의 수령이 천년을 넘는지라 그동안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각종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러한 역경을 거쳐 오면서 지금까지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가령 정미 의병(丁未 義兵)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이 절에 불을 놓았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해를 면했다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방화수(防火樹)로 잘 알려지고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때 사천왕전(四天王殿)이 불타버렸는데 이 은행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대신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나무에 대한 전설은 더 있다. 즉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변고가 있을 때 이 나무는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다고 한다. 나무가 소리를 낸다는 말은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종(高宗)께서 승하하였을 때에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고자 톱을 대는 순간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조 세종(世宗)때에는 이 나무에 당상관(堂上官)이란 품계가 주어졌는데 그 위계는 정삼품(正三品)에 해당된다.
또 은행 속에는 간놀, 펙틴, 히스티딘, 전분, 단백질, 지방, 당분이 많이 들어있어서
폐결핵 환자분이 오래 먹을 경우 기침이 없어지고 가래가 없어지는 효과를 본다.
이와 같은 효능은 은행이 호흡기능을 왕성케 도와주고 염증을 소멸시키며 결핵균의 발육을 억제하는 작용을 해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수들이 평소에 규칙적으로 은행잎을 달여서 먹기도 한다. 은행잎에서 추출되는 징코플라본글리코사이드는 혈액순환 개선제로 쓰이기도 하고 열매는 과육성분의 외피안에 단단한 껍질을 지닌 백과가 들어 있다. 노란색의 말랑말랑한 과육은 악취를 풍기며 비오볼이라는 물질이 있어 피부에 닿으면 피부병을 발병하기도 한다. 과육을 제거하고 안에 있는 씨를 먹는다.
이렇게 은행나무는 화석의 나무처럼 많은 전설과 우리 생활속에서 항상 고마움을 주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는 은행나무 박물관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도쿄에 있는 동경대학에 가면 은행나무 박물관이 있다. 은행에 대한 역사와 생활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구나 생활용품에 은행잎을 대상으로 심볼 마크로 이용하고 학교로그도 은행잎으로 디자인하여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성균관대학이 학교 마크가 은행나무 잎으로 되어 있다.
현재 도심에 식재되어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는 대부분 가지 폭이 넓게 생장하므로 도로 교통 표지판이나 건물 간판을 가리기 때문에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가을철 결실 되는 암나무에서 종자가 떨어져 고약한 악취냄새와 또한 인도와 차도에 열매가 떨어질 때 도로에 미끄러움과 보기 흉한 얼룩을 남기며 시민들이 은행 열매를 줍느라 교통사고 위험과 교통에 방해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감안 할 때 가로수 식재도 수형이 직립성으로 종자가 달리지 않는 수나무로 식재 조성되어져야 한다.
<전 산림과학원 박사/청림나무병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