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리더십 잃은 미국, 도청까지- 민태성 국제경제부장(뉴욕특파원 내정)

입력 2013-10-30 10:57 수정 2013-10-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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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성 국제경제부장
미국이 리더십을 잃은 지는 사실 꽤 됐다. 경제 규모에서는 확고한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약발은 먹히지 않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롯해 이라크를 초토화시킨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최근 ‘중동의 봄’ 사태에서도 미국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로 외교정책의 축을 이동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도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최근 셧다운 여파로 아시아 순방마저 무산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가뜩이나 ‘끗발’ 없는 미국이 초대형 악재로 휘청이고 있다. 도청 얘기다.

독일은 정부가 나서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주요국 역시 미국의 도청 행위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해서는 취임 전부터 10년 동안 도청이 있었다니. 그것도 대표적인 우방국이 말이다. 독일 입장에서야 당연히 발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적인 거짓말쟁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도청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메르켈 총리에게 자신이 미리 알았다면 중단시켰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독일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2010년 국가안보국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지만 작전을 중단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백악관은 이와 관련해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으나 이미 ‘양치기 소년’이 된 마당에 먹힐 리가 없다.

도청 사태의 파장은 진정되기는커녕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국가안보국은 2006년 세계 35개국의 지도자를 도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국 정부는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미국 안에서도 정부의 도청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 26일 워싱턴에서는 1000여명이 운집해 국가안보국의 도청 행위를 비난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티파티와 좌파가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정치 중심지인 워싱턴에서 보수를 대표하는 세력과 좌파가 한자리에 모인 것도 사례를 찾기 힘들지만 이들이 하나의 구호를 외쳤다는 것은 미국인들 역시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미국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사태를 더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성실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여야 했다. 당시 처신만 잘했더라도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라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한술 더 뜨고 있다. 그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가진 연설에서 독일과 다른 우방국들은 미국이 수집한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도적 개선 방안을 검토해야 하지만 정보수집 활동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공화당 소속의 피터 킹 하원의원은 미국의 첩보활동 덕분에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나가는 개도 웃을 소리다. 테러범도 아닌 주요국 정상의 통화를 엿들어서 무슨 생명을 구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전 세계의 경찰 운운하며 민주주의 대국을 자처했던 미국의 모습인가.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로 묘사한 절대권력을 풍자하며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이라고 했다.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말들은 오늘날 미국에 대한 오웰의 선견지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노든이 공개한 기밀과 위키리크스가 확보한 자료를 통해 도청을 비롯한 미국의 ‘만행’은 앞으로도 계속 만천하에 드러날 전망이다. 미국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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