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내 마음 속의 골목길- 황영민 하이투자증권 상인지점장

입력 2013-10-3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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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도시 건축관련 신문 기사를 읽다 보니 골목길에 관한 짤막한 글귀가 눈에 띄었다. 도시는 골목을 잃어버렸다고. 그래서 하늘이 사라졌다고 한다. 가만히 어릴 적 골목에 어린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 본다.

진달래와 산수유가 뒷동산에 만발하는 이른 봄날에 동네 골목길은 개구쟁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새싹 같은 생기로 들썩댄다. 일찌거니 명당을 먼저 차지한 발그스름한 뺨의 앙증맞은 계집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정겹게 하고 있으면 심술궂은 개구쟁이들은 치마를 들치거나 줄을 끊어 울리기 일쑤였다. 나지막한 흙담 한켠에 있는 감나무들이 짙고 푸른 그늘을 골목길에 드리울 때 노란 별같이 은은한 감꽃을 실에 꿰어 꽃목걸이를 만들어서 유별스레 괴롭혔지만 하모니카를 썩 잘 불렀던 눈이 큰 소녀에게 얼굴 붉히며 슬쩍 건네고 냅다 뛰어가던 풋사랑이 있었다.

한여름 매지구름이 몰고온 소나기를 초가집 처마 밑에서 피하며 발치에 비껴드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지푸라기에 고여 떨어지는 물방울을 조그만 손바닥에다 모으면 소년의 손은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되었다. 비가 그치고 골목길 실도랑에 종이배를 띄워 앞다투어 아랫마을까지 정신없이 내달리다 보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드넓은 바다로 갈 것 같기도 하였다.

높고 파란 하늘 아래 빨간 고추를 펴말리는 계절이 오면 우리들은 놀이터의 독점권을 어쩔 수 없이 내어주게 된다. 우리의 영역은 그만큼 좁아지지만 담장을 넘어온 석류며 홍시를 장난스레 따먹다가 헛기침 소리에 놀라 눈치를 볼라치면 못 본 척 슬며시 고개를 돌리던 가난했지만 넉넉했던 동네 어른들. 가을은 골목에서도 그렇게 여물어갔다.

한풍을 오롯이 막아주던 담장 사이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재기차기 그것도 슬슬 지겨워지면 숨바꼭질에 열중하다가, 흐린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덩치보다 더 큰 눈사람을 경쟁이라도 하듯이 만들어 골목 어귀에다 떡하니 세워두었다. 동네 처녀들은 사진을 찍느라 한무리 새들처럼 가볍게 재잘대며 들과 뒷동산으로 가서 하얀 눈속에 핀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해가 지고 끼니 때면 엄마들은 늘 골목 어귀로 우리를 찾아왔다. 놀이에 미련이 남아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못내 한두 명씩 엄마 손에 이끌려 총총걸음으로 사라진 후 골목길에는 텅빈 고요와 개구쟁이들의 온기만 남는다.

이제 고향 동네에는 해가 다르게 빈집이 늘고 무까끼한 콘크리트 주택이 들어서 골목길이 아예 없어지거나 그나마 생기없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 썰렁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동무들이 다시 뛰어 놀고 소녀들이 까르르 얘기꽃을 피울 것 같다.

무너진 골목길 담벼락에서 묻어나는 추억의 내음과 동무들의 얼굴들…그 눈이 큰 소녀는 나를 생각하며 하모니카를 불어 본 적이 있을까? 종이배에 꿈을 실어 보낸 동무들은 지금쯤 그 꿈을 찾았을까? 그래, 그때 우리들에게는 해맑고 아름다운 우리들만의 골목길과 작지만 아름다운 하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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