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판매' 그 불편한 진실]“대출요? 보험부터…” 中企·소비자 ‘꺾기’ 족쇄

입력 2013-11-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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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리려면 기본 ‘예금상품’ 가입하고 5년 유지해야 해지때 원금 상환

#중소기업 사장 A씨는 운영자금이 급하게 필요해 주거래은행을 찾았다. 은행은 대출 조건으로 매월 100만원씩 5년을 납입해야 하는 저축성보험 가입을 강요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A씨는 보험을 가입하고 대출을 받았다. A씨는 다른 은행에서 가입한 금융상품 납입액을 더해 매월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보험 및 예금상품에 넣어야 한다.

#대출 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은행을 찾은 B씨는 은행 직원의 권유로 저축성보험에 가입했다. 이미 여러 개의 보험상품에 가입한 상태지만 노후 대비에 꼭 필요하다는 직원의 설명에 상품 가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진 B씨는 은행에 상품 해지를 요청했고 뒤늦게 원금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축성보험은 납입기간이 5~7년은 지나야 본인이 낸 보험료만큼을 돌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직원의 말만 듣고 가입을 결정한 B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상품을 해지했다.

은행권의 금융상품 불완전판매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근 5만여명의 투자 피해자를 양산한 동양사태가 불완전판매의 심각성에 대한 불씨를 지폈지만 은행권 불완전판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기업·가계 등 경제 3주체간 경제활동이 시작되면서부터 불완전판매는 은행권의 고질적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지난 2003년 8월 방카슈랑스(은행 내 보험상품 판매) 도입으로 불완전판매는 기업에서 일반 금융소비자에까지 확산됐다.

금융당국은 제재 수위를 높이는 등 제도적 테두리를 한층 강화하고 은행권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불완전판매 근절은 아직 멀기만 하다.

◇ 은행권, 자금 급한 중기에 여전히 ‘꺾기’ 강요 = 경기침체 장기화로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에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은행권의 ‘꺾기(구속성 예금상품 판매)’는 적잖은 부담이다.

올해 5월 금융당국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5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꺾기 실태 조사 결과 10개 기업 중 2곳(23.7%) 이상이 최근 2년 내 꺾기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매출액 100억원 미만의 소기업 피해율도 24.9%에 달했다. 중소기업 대출 확대 등을 중심으로 한 은행권의 동반성장 구호가 무색해지는 결과다.

꺾기 적발 건수도 크게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를 기준으로 한 은행권 꺾기 적발 건수는 지난 2009년 99건(25억원)에서 지난해 1899건(658억원)으로 20배가량 급증했다. 올해 들어 9월까지는 213건(73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9월에는 금감원이 꺾기를 행한 6개 은행에 징계를 내렸다. 금감원은 KB국민, 하나, 외환, 광주, 전북, 수협 등 6개 은행에 대한 테마검사 이후 구속성예금이 많은 KB국민은행에 기관주의 조치를 내렸다. 또 KB국민, 광주, 외환은행에는 각각 2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고 수협은행에는 은행장에게 해당 직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은행과 중소기업간 키코 법정공방은 지난 2008년부터 5년째 계속되고 있다. 피해 규모는 ‘3조+α’상당으로 정부도 정확한 피해액을 추산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이 올해 9월 ‘키코는 불공정 상품이 아니다’고 판결, 키코 사태가 종결된 듯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소송 과정에서 일부 은행들이 ‘대출 후 꺾기’로 키코 판매를 권유한 경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은행은 해외 투자은행에 이를 판 경우도 있었다.

키코(KIKO)는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일 때는 계약된 환율로 거래해 헤지가 가능하지만 만일 약정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이 무한대로 커지는 고위험 파생금융 상품이다. 환율 변동성을 헤지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지만 지난 2008년과 같은 환율 급등 시에는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 실적경쟁·불완전판매로 소비자만 희생 = 일반 금융소비자도 예금 가입 시 보험 계약을 추가로 맺는 등 은행들의 꺾기 영업에 노출돼 있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2013년 보험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방카슈랑스(방카) 가입자 가운데 대출 신규 및 갱신, 한도증액 등 대출 거래 시 보험가입을 한 경우가 23.3%에 달했다. 다시 말해 방카 가입자 4명 중 1명은 이른바 ‘꺾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또 방카 가입의 대가로 기존 예·적금 중도해지 특별이율 적용 등 대가성 이익을 받았다는 응답도 16.3%를 기록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수수료 수익을 위해 만기가 긴 저축성보험이나 연금저축 등을 소비자에 권한다는 점이다. 저축성보험의 경우 최소 5년 이상을 유지해야 원금 손실을 면할 수 있는 탓에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 상품을 해지하면 원금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을 수 없다.

은행이 이처럼 만기가 긴 보험상품을 팔려는 이유는 판매 대가로 보험사로부터 3~8% 수준의 수수료를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방카 의존도가 높은 점을 이용해 은행이 보험사에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면 이는 곧바로 소비자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진다.

충분하지 않은 설명 또는 고의로 소비자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금감원은 올해 1월 방카 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소비자에 손해를 입히거나 꺾기성 보험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을 적발했다.

우리은행은 2011년 9월 21일부터 지난해 4월 26일까지 소비자 50명에게 한화손해보험의 ‘무배당 VIP 명품보험’을 팔면서 일시납입 계약은 추가 적립을 할 수 없다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고, KB국민·하나·외환 등 3개 은행은 2011년 9월 8일부터 지난해 3월 28일까지 7명의 소비자에 1인당 2건의 보험상품을 팔면서 매달 이자가 지급되는 방식의 계약을 체결토록 했다. 만기에 원리금을 한 번에 지급받을 경우 이들은 총 7500만원의 환급금을 더 받을 수 있었다.

KB국민·광주은행은 ‘꺾기’ 보험상품을 판매했다. 이들은 중소기업 6곳과 저신용자 12명에게 6억7400만원을 대출하면서 1개월 전후 대출금액의 1%가 넘는 1억100만원 규모의 구속성 보험상품 18건을 판매했다.

방카 불완전판매로 인한 고객 손해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올 3월 KB국민·신한은행은 일시납 즉시연금 상품에 가입해 매월 이자를 받으면서 그 이자로 적립식 상품에 추가 가입토록 해 1인당 2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1건의 계약만을 체결했다면 고객은 각각 1400만원, 2300만원씩의 이자이익을 더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은행은 50명의 소비자에게 보험상품을 판매하면서 2년납 보험계약 체결을 유도했다. 일시납과 2년납 모두 보험료 추가 적립이 가능하지만 일시납 방식은 보험료 추가 적립이 안 된다고 설명한 것. 2년납은 일시납보다 만기 환급금이 7800만원이나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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