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이석채 회장과 '배임죄'

입력 2013-11-08 11:02 수정 2013-11-0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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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ㆍ프리덤팩포리 대표

이석채 KT 회장이 결국 회장 자리를 내놨다. 검찰의 수사를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혐의는 배임죄다. KT 사옥을 감정가보다 낮게 매각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참여연대가 검찰에 이 회장을 고발한 이유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고발 이유가 황당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한국의 부동산 경기는 최악이다. 주택이고 건물이고 팔려고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부동산을 팔려면 사려는 측이 제시하는 값을 줄 수밖에 없다. 빨리 팔려고 하면 할수록 사려는 측은 가격을 후려쳤을 것이다. KT는 지난 몇 년간 여러 분야도 사업을 다각화했고 그러느라 많은 현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 저가 매각으로 보일 정도의 부동산 매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것이 범죄로까지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반대의 이유로 비난을 받는 기업인이 있다.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이다. 동양그룹은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동양매직, 동양레저 등 계열사의 매각을 시도했었지만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결국 현금부족을 견디다 못해 5개 계열사를 법정관리에 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현 회장이 높은 가격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헐값에라도 매각했더라면 부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거라는 말들이다.

이 지점에서 한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무엇이 제값이고 무엇이 헐값인가. 사전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이 값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전문가들이 내놓는 감정가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가격일까? 나는 누구도 객관적인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가격이란 파는 자와 사는 자가 밀고 당기면서 형성되는 것일 뿐 사전에는 알 수 없다. 거래가 되는 값이 제 값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만약 현재현 회장이 원매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헐값에 계열사들을 매각해서 자금난을 무사히 넘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참여연대가 KT의 이석채 회장에 대해서 그랬듯이 다른 누군가가 현재현 회장을 계열사 저가 매각에 따른 배임혐의로 고발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석채 회장의 부동산 저가 매각이 배임죄에 해당한다면 현재현 회장의 계열사 저가 매각은 규모가 큰 만큼 더 큰 배임죄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을 통해서 부도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필자가 이석채 회장 사건과 현재현 회장의 가상적 계열사 매각 사례를 비교한 것은 우리나라의 배임죄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임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는 것이 배임죄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를 경영판단의 원칙으로 피해 나간다. 경영자가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개인적인 착복이 없었다면 정당한 경영상의 행위로 간주한다는 원칙이다. 한국의 법원도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이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개인적 착복이 없는 데도 배임죄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즉 법원도 경영자의 어떤 행위가 배임에 해당하고 어떤 행위가 아닌지에 대해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이석채 회장을 고발한 것도 법원이 이 회장의 부동산 매각을 배임으로 판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우리는 경영자에게 도전정신을 가지라고 한다. 그것은 실패의 위험이 있더라도 과감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라는 말이다. 때문에 정직한 실패라면 다시 일어서라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이 옳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배임죄는 정상적인 경영행위마저 결과가 안좋다면 범죄로 몰아가곤 한다. 경영자들이 늘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래도 범죄 저래도 범죄라면 까짓것 개인적인 이익이라도 취할까 하는 유혹마저 느끼게 만든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 개인적인 착복이 없었다면 정상적인 경영행위로 간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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