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캐롤라인군도 앱섬의 돌화폐- 허점욱 한국예탁결제원 예탁결제본부장

입력 2013-11-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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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이 쓴 책 ‘화폐경제학’에는 마이크로네시아의 캐롤라인 군도에 있는 얩(Yap)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이 섬 원주민들은 약 400마일 떨어진 다른 섬에서 석회석으로 만든 거대한 돌바퀴를 운반해 화폐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섬에는 모든 원주민이 인정하는 가장 큰 돌화폐를 가진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집 가족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 돌화폐를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아주 오래 전 그 집의 조상이 다른 섬에서 만든 돌화폐를 바다로 운반하던 중 그 돌화폐가 그만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위 모든 사람들은 그 집을 가장 큰 돌화폐를 소유한 부잣집으로 믿고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밀턴 프리드만은 이 섬의 가장 큰 부잣집이 바다에 가라앉은 돌화폐의 재산권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본질적으로 사람들 간의 믿음에 기초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통장에 기입된 금액과 주식 수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믿음에 의해 보증되는 우리들의 재산권과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믿음에 기초한 경제활동’이라는 개념에는 원시사회나 현대사회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이 반영돼 있는 것 같다. 다만 각 사회의 복잡성과 발전단계에 따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인프라가 다를 뿐이다. 얩섬의 돌화폐 경제가 그 원주민 사이의 유대관계에 의해 유지됐듯이 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에서도 개별기업의 미시적 차원부터 국제 금융시장과 같은 거시적 규모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사람들 간의 믿음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와 인프라를 구비해 왔다.

요즘 많은 기업들은 고객들에 대한 믿음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윤리경영을 경영전략으로 실천하고 있다. 1999년과 2000년 포춘지가 선정한 기업에너지 부문 미국 최고의 기업이었던 엔론(Enron)이 분식회계와 같은 비윤리적인 거래로 고객에게 믿음을 잃은 결과 기업 자체가 사라진 것은 유명한 사례의 하나이다.

거시적인 자본시장에서도 경제거래의 안정성에 대한 모든 사람의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금융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시장 안정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도로와 항만, 전력과 같은 기간시설이 발전해야 하는 것처럼 한 나라의 자본시장이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증권 발행과 매매결제, 권리관리 및 전산시스템과 같은 인프라 증권 거래가 안정적으로 완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욱이 자본주의가 국제적으로 발달한 오늘날에는 한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한 나라의 자본시장을 넘어서 글로벌 시장 전체에 신용위기를 일으킬 수 있음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각 금융기관들과 정책당국은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용리스크(Credit risk) 관리라는 개념으로 자본시장에서 사람들의 믿음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자본시장의 인프라는 이러한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부여 받았다. 이같은 맥락으로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자본시장법 및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금융투자상품 거래에 대한 청산업 인가제도를 도입해 장외파생상품거래와 증권장외거래의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청산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한 것은 참으로 타당한 일이다.

앞에서 소개했던 얩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인프라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믿음에 어긋나지 않고 예측 가능하도록 그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항상 앞날을 대비해 준비돼야 한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한 축소 등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의 위기 상황에서도 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 즉 신용을 지켜 낼 수 있는 선진화된 인프라가 차질없이 준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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