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게임산업]‘창조경제’ 공동화 현상 현실화 되나

입력 2013-11-1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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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체들 해외용 게임만 눈독…국내생산 여건 저하로 고사 위기

#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스타크래프트2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WCS)’행사장. 초대 WCS 챔피언 자리를 차지한 주인공은 1만명이 넘는 미국인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우승상금 10만 달러를 거머쥐었다. 북미, 북남미 지역 축제의 주인공은 동양인으로, 다름 아닌 한국 출신 김유진 선수다. 서양의 e스포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게임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프로게이머인 그는 과연 게임중독자일까?

#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지난달 30일 ‘빅텐트 서울 2013’ 참석차 방한, 한국 게임산업과 관련해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창의력을 꽃피우기 위해서 정부는 게임산업을 그냥 둬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이 산업은 자연스럽게 부흥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소견을 밝혔다. 글로벌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대표도 최근 게임중독법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어렵게 해 한국 수출길을 막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게임과 디지털 콘텐츠 글로벌 선두주자인 한국이 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책은커녕 규제안을 연이어 내놓자 이들 글로벌 빅가이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칫 산업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깊은 유감을 표했다.

국내 정부와 정치권의 잇따른 게임산업 규제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치권의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직도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셧다운제와 게임시간선택제는 이미 시행 중이고, 올해는 게임업계 매출의 1%를 게임중독치유기금으로 강제 징수하는, 이른바 ‘손인춘법’을 시작으로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 유발물질로 간주하겠다는 ‘신의진법’까지, 규제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간 정부 규제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던 게임업계는 최근 잇따라 발의된 규제법안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독 관련 법안의 취지는 이해하겠으나, 게임 중독자를 치료하는 데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복지 예산을 편성해야지 게임사에 벌금을 징수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 문제에 대해 단말기업체 삼성전자를 규제하고 벌금을 물릴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 유통업체 CEO는 “게임 관련 법이 시행되더라도 청소년들은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롤, GTA 등 미국 게임을 즐길 확률이 100%”라며 “결국 외산 게임 배만 불리고, 국내 게임산업은 고사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때문에 최근 메이저 게임사들은 해외에서의 매출 비중을 점차 높이는 동시에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거나 대작게임 개발 자체를 아예 해외법인에서 추진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규제를 피해 본사를 이전하고 개발 시스템을 해외로 옮긴다면 국내 게임산업은 그야말로 산업공동화 현상을 겪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창조경제 핵심 콘텐츠인 게임산업이 공동화 현상으로 지속적 신작 출시와 해외 수출 규모, 게임 개발에 대한 인기, 고용창출 등의 효과가 서서히 사그라들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1980년대 말 제조업체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면서 발생했던 산업공동화 현상이 이제 게임분야에서도 현실화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게임사 CEO들은 해외법인으로 거점을 옮기거나 내수시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해외 시장에 대한 투자는 늘리고, 개발보다 외산 게임 퍼블리싱에 집중하는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는 빠른 속도로 식어갈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국내 게임사들은 해외사업의 비중을 높이며 글로벌을 외치고 있다. 넥슨은 3분기 매출 가운데 40%가 중국에서 거둔 성과이며, 해외 매출 비중은 이미 70%를 넘었다. 지난 4월 CEO스코어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와 네오위즈게임즈를 비롯한 10대 게임사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총 1조1667억원으로 전체 매출 1조8928억원 가운데 62%를 차지했다. 2011년 전체 매출 1조9868억원 가운데 해외 매출이 9476억원으로 48%를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해외 매출 비중이 불과 1년 만에 14%포인트나 높아졌다.

해외매출액이 가장 많은 게임사는 엔씨소프트로 2011년 2048억원에서 지난해 3318억원으로 1300억원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4%에서 44%로 10%포인트나 상승했다.

온라인 게임 시장을 주도했던 국내 게임사들이 대세인 모바일쪽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의 성장성은 높지만 진입장벽이 낮아 게임 공급 과잉 현상이 생겼고 수익성은 악화됐다. 온라인 게임 추가 개발과 배급이 감소하며 게임산업 공동화는 이제 우려가 아닌 현실화 단계를 걷고 있다.

소프트뱅크코리아 문규학 대표는 “마약 딜러 같은 취급을 받느니 이참에 회사를 외국으로 옮기고 주요 임원은 싱가포르 같은 곳으로 다 이민 가라”고 트위터를 통해 격정의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도 “게임의 특성상 핵심인력만 해외로 빠져나가도 국내 서비스는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며 “이런 식으로 게임업체가 서서히 빠져나가면 10만명 가까이 일자리를 잃어 국내산업 공동화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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