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가계부채 폭탄 돌리기 그만하자-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입력 2013-11-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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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위험 징후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가계부채는 영세 자영업자의 빚과 합치면 1000조원을 훌쩍 넘고, 하우스푸어와 연결되어 한국경제의 대표적인 위험 요인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경고등이 켜 있어서인지 이제는 무덤덤해진 상태이다.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지 않을 때 터질지 모른다. 국가부채도 금융위기 수습, 무리한 토목사업, 감세 등으로 인해 빠르게 늘고 있다. 공기업 등에 숨어 있는 부분까지 합치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평균 수준에 이를 것이다. 이것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이후의 구조조정 덕에 건전하다고 생각되었던 기업과 금융부문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 기업부문은 삼성전자 등 몇몇 잘 나가는 기업을 제외하고는 수익성, 건전성 등이 나빠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우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2013년 상반기에 전체의 절반 가까운 43.7%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부 재벌기업의 경우도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으로 부풀려진 자기자본을 빼면 부채비율이 위험 수준인 200%를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재벌은 시장여건이 나빠지면 STX나 동양그룹의 뒤를 따라 부실화될 수 있다. 금융부문은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와 내수 위축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차입 주체인 가계나 기업에 큰 문제가 생기면 금융기관은 쉽게 위기 상황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1997년 IMF 금융위기는 대기업들의 과다차입에 의한 과잉투자와 이에 대한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실패가 일차적인 원인이었다. 즉, 기업의 부실화가 은행위기와 외환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정부와 가계는 건전성이 양호하여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되었다. 정부는 채무증가에 신경 쓰지 않고 과감한 공적자금 투입 등을 통해 신속한 금융 및 기업구조 조정을 단행할 수 있었다. 가계는 정리해고 감수,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위기 극복을 지원했다. 위기는 항상 올 수 있으며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른다. 1997년처럼 우리나라에서 발생할 수도 있고, 2008년처럼 다른 나라의 위기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현재와 같이 가계, 기업, 금융기관,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의 건전성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가 오면 극복은 어렵고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의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경제 주체의 과다부채가 기조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위기 대비는 취약 부문의 부채를 줄이거나 더 이상 늘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거의 목에 차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어 있다. 가계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는 정책은 피하여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가계부채를 늘려 눈앞의 문제만 모면하려 하고 있다. 생애최초 주택구입 자금, 취득세 영구인하, 공유형 모기지 대출 등은 모두 더 많은 사람이 빚을 내 집을 사도록 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지속적인 주택경기 부양책을 통해서, 하우스푸어는 전세금을 올리면서 집값 오르기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2013년 9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소득 대비뿐 아니라 절대 수준으로도 서울의 집값이 뉴욕의 집값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두 배가 넘고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보다 서울 집값이 비싼 것은 비정상도 한참 비정상이다. 주택거래가 안 되는 것은 한국의 경우 집 살 사람의 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급속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 등을 볼 때 앞으로 집값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르기가 더 어려워진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하우스푸어는 버텨낸다 하더라도 이자부담으로 말라 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도 운이 좋으면 이명박 정부와 같이 가계부채 문제를 다음 정권으로 미룰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소비 위축에 따른 경기둔화와 경제구조 왜곡 등 국민경제의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다. 이제 폭탄 돌리기는 그만두고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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