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첨단 계측장비가 도입되면서 새로운 룰과 기록을 만들고 있다. 첨단 계측장비에 대한 신뢰성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도입하는 스포츠가 증가하며, 이는 곧 규정의 변화를 의미한다.
변화의 한가운데 축구와 야구가 있다. 양대 구기종목에서 첨단 계측장비가 판정 도구로 도입됨으로써 경기 규정의 변화를 예고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2014년 시즌부터 구심 판정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비디오 판독을 사용한다. 미국프로야구 30개 구단 단장들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총회를 열고 내년부터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새 규정에 합의했다.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제외하고 아웃·세이프, 체크스윙, 파울·페어 등을 놓고 한 팀에서 경기당 2차례씩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다.
내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골 판정 기계(골 컨트롤 4-D)를 도입한다. 최첨단 위치 측정 센서를 통해 골인 여부를 주심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FIFA는 이번 대회부터 골 판정에 시비가 날 경우 계측장비의 판정에 맡긴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번에 도입하는 ‘골 컨트롤’은 골 인정 여부만을 판정하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한 대회에서 사용 횟수가 1~2번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FIFA가 이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는 그만큼 한 골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찬하 KBSN스포츠 축구 해설위원은 “시대의 오심을 없애려는 FIFA의 노력”이라며 “팬들에게 더욱 공정한 게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와 야구 이외의 종목에서는 첨단 계측장비가 폭넓게 활약 중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안티 플로핑(Anti-Flopping)’ 바이얼레이션(반칙)이 계측장비로 인해 만들어졌다. NBA가 지난 시즌부터 도입한 규정으로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여 파울을 얻어내기 위한 과장된 동작을 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흔히 ‘할리우드 액션’으로 불리는 동작이다. 의혹이 제기된 선수에 대해 NBA 사무국이 경기 내용을 판독한 후 벌금 여부를 판단한다. 지난 12일 휴스턴 로키츠의 가드 제임스 하든은 상대 수비수와 가볍게 부딪힌 후 코트 위로 넘어지는 행동으로 5000달러(약 530만원)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테니스에서는 2006년 첨단 계측장비 ‘호크아이’를 도입했다. 코트 내 설치된 여러 대의 카메라로 공의 궤적을 포착해 아웃 여부를 판정했다. 이로 인해 경기 중 이의 제기를 최소화했다.
첨단 계측장비 도입으로 새로운 기록이 수립되고 있다. 육상은 계측장비의 발달로 변화가 가장 많았던 스포츠 중 하나다. 초고속 카메라 판독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1972년 뮌헨올림픽 때부터 100m 육상경기의 100분의 1초 측정을 도입했다. 이후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동순위자 발생 시 1000분의 1초까지 발표한다. 뿐만 아니라 부정 출발 또한 기계의 판독에 맡겼다. 선수들의 발판 압력을 감지하는 장치를 통해서다. 출발 신호 후 0.1초 내 발을 떼면 부정 출발로 간주한다.
빙상 경기에서도 계측장비는 큰 역할을 해냈다. ‘빙상 여제’ 이상화(24)는 지난 17일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하루 사이 2개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이 선수는 36초36으로 세계신기록 경신해 전날 기록한 36초57의 신기록을 또다시 0.21초 단축했다. 이는 100분의 1초까지 판독하는 계측장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밖에도 경륜, 수영, 스키, 쇼트트랙 등에서 첨단 계측장비가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계측장비로 인한 긍정적 변화 중 빠른 경기 진행은 부가 이득이다. 비디오 판독으로 판정에 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ESPN 야구 전문 칼럼니스트 짐 보우든은 “비디오 판독으로 경기가 지연된다는 의견도 있다”면서도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는 시간보다는 더 적게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