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평양에 흩날린 분홍빛 속옷

입력 2013-12-06 10:56 수정 2013-12-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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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현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 석사과정

지난 10월 스웨덴 ‘속옷회사’ 비에른 보리는 할로윈데이를 맞아 ‘사랑과 유혹의 대량무기(?)’가 가장 필요한 도시를 뽑기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 30일 후, 약 19만6000명의 방문자에 의해 8000곳의 후보지 중 압도적인 표 차이로 한 곳이 선정됐다. 바로 평양이다. 선정지에 450벌의 속옷을 투하하기로 했던 이벤트를 완성하기 위해 회사 대표는 평양으로 잠입했다. 관광비자를 발급받고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속옷을 가지고 들어갔다. 속옷을 가이드에게 선물로 주기도, 일부러 길거리에 흘리기도, 양각도호텔 객실에서 날리기도 했다. 대표의 10일간의 일기는 회사의 홈페이지에 블로그 형식으로 아기자기하게 기록돼 있다. 비록 사전에 공언한 ‘항공기 투하’는 못했지만 대표의 손으로 직접 투하하는 걸로 갈음했다.

북한에서 속옷이란 무슨 의미일까? 우리나라에서 친근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감히 선물할 수 없는 그것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중앙당 간부들이 예술단 여성들을 ‘꾈 때’ 가장 요긴한 선물이 속옷이라고 한다. 심지어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외국갈 때마다 선물용으로 속옷을 몇톤씩 사왔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선물이다. 북한은 화려하고 세련된 속옷 보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있는 만큼 이번 속옷 투하 이벤트는 북한주민들이 꽤나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이번 속옷투척 작전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중 31% 즉, 거의 3명 중 1명꼴로 ‘통일은 필요없다’는 응답을 했단다. 충격적인 결과다. 그럼에도 11만명의 누리꾼이 ‘분홍 속옷’이 필요한 곳으로 북한을 투표할 만큼 그곳에 ‘자유’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탈북자들의 99%가 한국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온 시대다. 소녀시대의 스키니진이 평양에서 조심스레 유행하고, 장마당도 어느새 북한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낭만과 풍요를 상징하는 ‘분홍’속옷들의 투하가 변화의 바람에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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