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있는 ‘응사’·밤새는 ‘상속자들’, 촬영현장의 불편한 진실 [최두선의 나비효과]

입력 2013-12-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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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메인포스터(사진 = tvN)

“한국드라마 촬영현장은 말이 안 된다고들 한다. 매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고질적인 면이 왜 해결 안 되는지 모르겠다. 20~30년 전과 비교해도 더 좋아진 것이 없다. 연기자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100%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잠 못 자는 스트레스와 대본을 현장에서 외워야 한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

데뷔 19년차 배우 최지우는 최근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종영 인터뷰에서 드라마 촬영현장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4일 밤낮을 3시간 밖에 못 잤다. 그것도 침대는 언감생심, 이동 중 차 안에서 눈을 붙인 것이 전부였다. 안방에서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70여 분의 방송분 이면에는 잠과의 치열한 사투를 벌인 배우들의 피곤함이 묻어나 있다.

드라마 촬영현장의 밤샘촬영, 쪽대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배우들이 촬영현장 잔혹사에 시달렸다. 누구보다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배우로서의 부담감,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는 인물의 감정표현 이면에는 ‘잠’이라는 복병이 숨어 있었다. 이 같은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현장 관계자들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다른 촬영현장도 모두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고작 3~4개월 전력질주’라는 말로 위안을 삼기에는 상당히 치명적인 일정이다. 무엇보다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드라마를 전달해야 하는 책임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드라마 소품,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수십 번 곱씹어보며 감정이입하는 시청자들에게 이 같은 현실은 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중인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빡빡한 스케줄이지만 미리부터 촬영을 시작한 만큼 지나치게 밤을 새거나 쪽대본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이 한 출연배우 소속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 4월 종영한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16부작 중 8회를 미리 제작하며 ‘반(半) 사전제작’ 드라마라는 별칭을 얻었고,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상속자들' 메인포스터(사진 = 화앤담픽처스)

두 작품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시청률, 작품성보다 출연배우들이 “연기 잘한다”는 평을 넘어 캐릭터에 완벽히 빙의되며 시청자들과 소통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촬영현장의 컨디션은 배우, 연출진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이는 좋은 작품으로 반영된다. 물론 밤샘촬영의 연속인 SBS 드라마 ‘상속자들’의 성공과 사전 제작된 SBS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의 실패처럼 예외인 경우가 상당수 존재하지만 시청자의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의 탄생 가능성에 있어서 보다 여유로운 촬영현장의 필요성은 현장의 모든 이들이 절실히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편성, 캐스팅, 대본 집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한다.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예민하게 반영되는 드라마의 특성, 계절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하루 12시간 촬영, 90일 이내 촬영이 보장된 중국 드라마 촬영현장과 일주일 1회 방송되는 미국, 일본의 상황과는 시스템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하나의 드라마가 탄생하기까지 단계적으로 얽히고설킨 주역들의 부지런함과 양보, 사명감이 반영된다면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쪽대본 없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는 “나는 함께 일하는 팀에 폐가 돼서는 안 된다 주의입니다”며 드라마 현실에 일침을 가했다. 노희경 작가는 쪽대본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체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겸손히 답변했지만 방송 시작에 앞서 16부작의 12회 대본을 배우들에게 모두 건넸다.

한국드라마의 영향력이 날로 확장되며 문화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고질적인 드라마 촬영장의 문제점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배우, 작가, 감독, 방송사, 제작사 등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담겨있는 우리 드라마가 안방으로 전달되기 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똑똑한 시청자들’의 만족감도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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