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코란도C, 낯선 차에서 풍기는 쌍용차의 아우라

입력 2013-12-11 23:01 수정 2013-12-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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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뉴 코란도C는 SUV 마이너체인지의 좋은 본보기다. 보디 패널과 레이아웃을 유지한채 전체 이미지는 화끈하게 바꿨다. 적은 비용으로 적잖은 신차효과를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커오던 시절을 되짚어보았다. 차가 많지 않던 그 시절. 우리는 ‘자가용’이라는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그들을 불렀다. 그 무렵 코란도는 앞에 붙는 수식어를 거화에서 동아로 그리고 다시 쌍용으로 뒤바꾸어가며 운명을 달리했다. 무던히도 풍파에 휘둘리던 때였다.

거화 코란도는 오로지 이름만 아름다웠던 ‘엘프’ 엔진을 얹었다. 배기량이 얼마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밤늦게 차를 끌고 아파트에 들어설 때면 천지를 울려대던 탱크 소리만 기억난다. 그래도 ‘철커덕’ 거리며 제자리를 찾아가던 4단 수동기어는 재미가 가득했다. 기다란 작대기를 휘두르는 맛도 일품이었다.

◇영겁의 세월을 거스르는 대한민국 SUV의 역사

1970년대 거화 코란도는 출고 때부터 AT타이어를 달고 나왔다. 요즘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실내는 군용차와 다를 게 없었다. 운전대라고 불렀던 스티어링 휠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세꼭지 별을 닮았었다.

동그란 속도계와 수온계가 오밀조밀 모인 계기판은 운전석과 동반석 사이에 얹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오디오가 달려야할 위치다. 운전하다 속도계를 보려면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려야 했다. 기막힐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코란도 위에 올라앉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4륜구동은 원초적 매력이 가득했다. 앞바퀴에 쪼그리고 앉아 ‘록킹허브’를 손으로 뱅글뱅글 돌려야 했다. 다 돌아가면 ‘딸깍’걸리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입가에는 씨익 미소가 지어졌고, 자신감도 벅차올랐다. 다시 차에 기어(?)올라와 4륜 트랜스퍼를 4H나 4L에 끼워 맞추면 네바퀴에 육중한 힘이 들어간다. 자주 쓰지 않는 트랜스퍼는 여간 뻑뻑한게 아니었다.

▲코란도는 대한민국 SUV 역사를 대변한다. 하동환자동차에서 시작해 신진과 거화, 동아자동차를 거쳐 이제 쌍용차로 거듭나며 영겁의 세월을 이어왔다. 사진 왼쪽이 CJ 코란도의 마지막 세대. 오른쪽은 메르세데스-벤츠 OM시리즈 디젤 엔진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2세대 코란도.

4륜을 넣고 차를 움직이면 핸들은 마구 화를 냈다. 어디로 튈지 몰라 요동쳤고 차체는 지진난 집처럼 요동쳤다. 4륜구동과 2륜구동을 가볍게 오고가는 이야기는 21세기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이 21세기다.

1980년대 뒤에 나온 동아 코란도는 모든게 멋졌다. 대우 원박스카 바네트에도 잠깐 얹었던 일본 이스즈 디젤 엔진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차 지붕 모서리를 둥그렇게 다듬어낸 모습도 예뻤다. 승용차를 흉내 낸 대시보드는 당시 기준으로 첨단이었다. 보닛 끝에는 코뿔소 엠블럼도 자랑거리였다. 운전하면서 바라보는 코뿔소의 풍만한 엉덩이는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쌍용 엠블럼 얹으면서 획기적인 변화 가져와

동아 코란도는 당시 기준으로 모든게 첨단(?)이었지만 대부분이 수동이었고 원초적이었다. 심지어 에어컨도 없었다. 폐차장을 뒤져 간신히 구한 '고속버스용' 에어컨은 조수석 무릎 앞에 꽂았다. 한 여름에도 냉기 가득한 코란도를 만나는건 그 시절 행복이자 사치였다.

1990년대 쌍용차로 이름을 바꾼 뒤부터 코란도는 번쩍이는 치장을 덧댔다. 새로 얹은 푸조의 디젤엔진은 출력도 좋아졌다. 그대신 중저음의 이스즈 디젤의 매력적인 소리는 사라졌다, 파워윈도가 달리고 가죽시트가 생겼으며 차 옆면에는 알록달록 스티커도 붙었다. 오래토록 옆에 두었던 벗은 그렇게 화장기 짙은 얼굴로 변하면서 조금씩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2000년대 뉴 코란도는 디자인도 바꿨고 엔진도 메르세데스-벤츠 OM시리즈를 얹는다. 지금도 ML-클래스와 G-클래스에 장착되는 계열이다. 우리에게 5기통 디젤의 부드럽고 육중한 토크를 처음 맛보여준 엔진이기도 했다. 4기통의 경제성과 6기통의 여유로움을 적절히 머무린 엔진은 나무랄게 없었다.

▲뉴 코란도C는 실내에 적잖은 변화를 줬다. 단순한 대시보드 형상변형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 보수적인 쌍용차의 특성을 감안하면 과감한 도전이자 변화다.

‘이름만 빼고 모든걸 바꿨다’고 자랑했지만 미국 다나(DANA)社에서 가져왔던, 1970년대 액슬과 파워트레인 주요부품은 고스란히 달았다.

이 무렵 쌍용차의 개발능력과 조립기술은 대항마를 만들었던 현대정공 따위는 범접할 수 없었다. 디자인과 엔진경쟁력, 제품 라인업, 조립기술, 마케팅, 경영전략 등 무엇하나 빠지지 않았다. 이 무렵이 쌍용차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쌍용차 고유의 특성 사라져

당시 쌍용그룹은 ‘이노베이션’을 외치며 최고의 브레인들을 모았다. 현대차 못지않은 인재를 뽑았고 지금도 쌍용차를 떠받드는 이들이 모두 이때 회사에 뛰어든 인재들이다.

2010년에 들어서 코란도는 더 이상, 그 옛날 기억 속의 코란도가 아니다. 이름도 달라졌다. 친근한 친구 이름에 이제는 “아무개 씨~”를 부르듯 이름도 “코란도C”로 변했다.

그렇게 십 수 년 함께했던 나의 친구 코란도는 조용히 내 곁을 떠나고 있었다. 소수의 선택받은 자, 아니 운전이 힘들고 달리기가 버거워도 끝까지 코란도를 지켰던 수많은 마니아도 조용히 코란도를 떠나보냈다.

말끔한 새차는 이제 탄탄한 ‘프레임 온 보디’를 버리고 말랑말랑한 ‘모노코크’ 보디를 쓴다. 코란도를 상징했던 2도어 대신 쓰기편한 4도어 타입으로 변했다. 도어를 열고 닫을 때 묵직했던 느낌은 2세대 뉴 코란도가 10배쯤 좋았다.

가속페달을 밟아대도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며 불평했지만 그때 뉴 코란도가 더 쌍용차다웠다. 발을 살짝 얹기만 해도 득달같이 달려 나가는 코란도C는 어딘가 모르게 현대차를 닮아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낯선 차에 붙어있는 KORANDO라는 엠블럼은 자꾸만 그 옛날 털털거리는 내 친구를 그립게 한다. 겉모습이 말끔하게 다듬어진 뉴 코란도C는 시승하는 내내 옛날 추억만 빠져들게 한다.

▲나무랄게 없었던 뒷 모습은 테일램프를 LED 타입으로 바꾸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휠 스탠스와 균형미는 데뷔 3년을 넘겼지만 여전히 멋스럽다. 중저속 중심에 맞춰진 엔진 토크는 1.7톤의 SUV를 솜털처럼 가볍게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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